얼마 전 국기원 산하 '태권도 연구소'가 설치되고 첫 과제가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로 설정되었다 한다(본지 5월 22일자 참조). 

태권도 행정 단체의 지속적 재정을 지원 받는 연구 부서가 설립되고 전문 인력들이 확보되었다고 하니 태권도인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범태권도 차원에서 명실상부한 상설 연구소로는 최초로 간주되며 그 앞날에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어린이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부설. 서울 용산 소재)의 한쪽 벽면에 전시된 태권도 역사와 관련된 그림이다. ‘수박희’란 이름으로 씨름과 더불어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초대형 그림으로 재현했다. 우리 태권도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첫 단추를 끼울 ‘태권도 역사와 정신’ 분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태권도 핵심 연구 과제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태권도 공식 차원에서 태권도 정체성을 세우는 터라 더욱 의미심장하다. 태권도의 토대를 닦는 작업인만큼 연구 과제의 성격이나 연구 방향에 관해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연구 과제의 어려움에 관해서이다. 태권도 역사와 철학 분야는 여러 차례 프로젝트와 세미나를 통해 접근된 주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명확한 결론이 도출되지 못했다. 지난 30여년간 십 수명의 교수, 학자들이 오랜 세월을 보내며 고심했지만 그 성과가 미흡한 난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태권도 역사는 이러하다”. “태권도 철학은 이거다.” 하고 나름대로 연구 결과가 제시되었지만 연구자의 주관적 경향과 태권도인의 고정 관념으로 인해 수용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번 태권도연구소에서 다루어야할 첫 과제로 역사와 정신이 채택된 것이 아닐까. 

이번 연구 결과가 많은 태권도인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선까지 도달해야 할 뿐 아니라 공인된 역사나 정신으로 정착되는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는 험난한 역정으로 보인다.

둘째, 연구 방향(방침과 방법)의 설정에 대해서다. 이번 설립된 연구소에서는 각계 전문가(태권도, 철학, 체육사 분야)들로 구성된 연구원들을 위촉하고 담당 분야별로 연구 주제를 할당할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의 연구를 위해 중국, 일본 등 해외 국가 탐방조사를 계획하고 세미나와 국제포럼을 열어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 같은 연구 방침은 보편타당하고 체계적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 과연 이같은 방법으로 태권도 역사나 정신에 관해 ‘공감할 수 있는 합당한 중심 논리’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통상 한 연구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 연구자는 과제가 요구하는 핵심을 관통하는 ‘주된 논리’를 세우고 살을 붙이고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논지의 골격이 되는 ‘기본 논리 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아무리 내용을 채우고 외면을 치장해도 모래탑처럼 무너질 수가 있다. 특히 역사와 정신 철학 면에서 공인된 논지를 세우기에 적지 않은 난관을 안고 있는 현 태권도의 상황은 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태권도 정신과 철학 연구의 상이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태권도 ‘역사’와 ‘정신’은 같은 범주에서 다루어져야할 동일 과제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두 분야는 각각 상이한 특성을 가지므로 전혀 다른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예컨대 태권도 역사는 ‘사실’에 준하되 ‘해석’과 ‘논리 서술상의 기법’이 채택되어야 한다. 태권도에 영향을 준 카라테를 어떤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줄여서 기술하고 수박, 권법, 택견 등 한반도 고유 무예와 어떤 논리로 연결시켜야 하는 가에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태권도 입장만을 강조한 편협한 역사 서술은 지금 교본에 나온 내용과는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김영선 본지 전문위원.

태권도 정신 분야도 역사 못지 않은 난제이다. 자기수양의 격투술이자 올림픽스포츠이며 생활체육 종목으로 변용된 태권도의 본질과 가치관 변화는 정신 철학면에서도 혼란스럽게 한다. 다른 무술과 차별화된 태권도만의 특성을 살리면서 현대적 관점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설정하고 논리정연한 서술이 되어야 한다.

넷째, 과제 해결을 위한 방안과 기존의 선행 연구 분석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 방침이나 방향의 결정 전에 과제에 대한 기존 논지이나 주관적 이론을 충분히 검토하는 작업이다. 시점으로 봐서는 본격적인 연구 전에 재고되어야 한다.

연구 과제가 요구하는 핵심이나 쟁점, 효과적인 해결 방안 등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문제 해결의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태권도 역사나 정신에 관해서 지금까지 수 많은 개인적 저작물과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한 이론들이 어떤 타당성과 문제점이 있는지 세부 사항을 파악해서 어떤 방향이 최선의 논지가 될지를 밝혀주는 근거가 된다.

이렇듯 어려운 과제 해결을 위해 개설된 태권도 연구소의 활동에 관심과 기대가 적지 않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견해를 지닌 학자들은 물론 대다수 태권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어야 비로소 태권도 정체성이 탄탄해 질 것이다.

김영선 전문위원(연세대 태권도 전문강사)  kek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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