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3.3.30 목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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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꽃피운 태권도 인생(5)인디안 장로들 태권도에 “노!”

당시 한국에는 나처럼 외국 이민을 가려고 애쓰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생전 삽자루를 잡아 보지도 못한 학사 출신의 젊은이들조차 광부로 지하 몇 백 미터 갱 속에서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서독행 신청을 꽤 많이들 하였다.

이들에 비하면 나의 선택은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가질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Duty Free Shop(면세점)을 둘러보니 모든 제품들이 외국제이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총 재산이 370달러다 보니 그 중 가장 갖고 싶은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를 큰맘 먹고 거금 37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캐나다행 비행기로 10시간 지나 도착한 곳이 밴쿠버 공항이었다. 동양인이라고 우리 가족뿐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백인들이어서 또 한 번 긴장을 하게 되었다. 이민 수속을 해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한국인 여자 한 분이 오셔서 안내와 통역을 맡아 수속을 쉽게 마칠 수 있었다. ‘미세스 조’라고 하시는 분인데 내 이력서를 보더니 벤쿠버에 태권도 사범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미 성공해서 건물까지 구입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신다며 나보고도 열심히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밴쿠버에서 또 한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6시간 정도 가서야 우리의 목적지인 토론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몸은 23시간의 장거리 비행에 파김치가 되어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수년 전에 이민 온 누나와 매형, 그리고 형과 누이동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웠던 남매들을 만나니까 이곳이 우리가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할 땅이라는 것이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짐을 찾고 매형의 대형 캐딜락으로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니 세상에 이처럼 큰 나라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집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는데 갈비가 즐비하게 나왔다. 항상 이렇게 갈비를 많이 먹는가  물었더니 고기 값이 한국의 우거지 값 정도라 그렇다고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왜 캐나다 고기 값이 그처럼 싼지 생각해보았지만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며칠간 누나 집 신세를 지며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 하니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자나 깨나 태권도장을 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말도 안 통하고, 돈도 없으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는 이미 이경태 사범(WTF)과 박종수 사범(ITF)이 도장을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이경태 사범 도장을 방문하여 여러 조언을 받았고, 친절히 저녁식사 대접도 받았다. 이경태 사범은 이미 성공하여 도시 근교에 대궐 같은 저택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얼마 후 이경태 사범의 소개로 인디안 원주민 촌으로 들어가서 태권도 지도를 하지 않겠냐는 온타리오주(州) 정부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나로서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이경태 사범, 당시 최연소 사범이었던 이태우군, 그리고 나, 세 명은 같은 온타리오주(州)이지만 비행기를 3번씩이나 갈아타고 불모지와 같은 인디안 보호지역으로 길을 떠났다. 육로로는 전혀 없고 수상 비행기로만 다가갈 수 있는 유배지 같은 곳이었다.  

시범을 몇 차례씩이나 하고 토론토로 돌아왔지만 막상 ‘오케이’ 결정이 떨어져도 그런 벽촌에서 인디안 원주민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우리 아들 용석이가 인디안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면 앞으로 무엇이 될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예스’ 답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송판을 깨고, 상대를 제압하는 호신술을 보고 인디안 장로(elders)들의 답은 과거의 전쟁이 연상된다며 만장일치로 주 정부의 제안을 부결시켰다고 전해왔다. 이렇게 해서 캐나다에서 태권도 사범 생활의 시작은 더 훗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서정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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