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꽃피운 태권도 인생(4)

그 당시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경호실로 경호원들을 파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경호과 과장님과 동기생인 한흥태와 나는 한국외국어대 인도네시아 교수를 경호실로 초빙하여 인도네시아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1974년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시해하는 사건이 터져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후 경호실 내부에 큰 변화가 생겼다. 군 병력이 경호실에 대거 투입되면서 무도와 사격 연습이 더욱 강화 되었다.

매년 12월 17일이면 경호실 창립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무도대회가 각 부대별 대항으로 벌어졌다. 거의 10개 부대 병력이 참여했기에 경기는 매우 치열했다. 1974년도 창립 기념 대회에서는 우리 경호처팀이 우승하였으나 그 다음해부터는 양상이 바뀌었다. 공수여단팀에는 실력이 아주 탁월한 허송 대위(제2회 세계대회에 출전)가 있어 우리 팀 주장이 상대하기에 매우 버거웠다. 경기 종료 후 그 후유증이 너무 오랫동안 남게 되어 1976년부터는 시범경기로 대처하였다.

1974년 가을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기거하셨던 분의 소개로 나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혼기를 놓친 노총각이다 보니 한눈에 아내가 될 규수에게 반하여 11월에 약혼을 하고 1975년 4월 19일 서린호텔에서 김운용 총재님의 주례로 만 30세의 노총각 딱지를 떼게 되었다. 그 당시 아내는 23세를 갓 넘긴 처녀였기에 7살이나 많은 노총각하고 결혼하게 되어 억울했다는 농담을 아직도 하고 있다.

결혼 후 용강동에서 사글세 방 한 칸을 얻어 달콤한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첫 아들 용석이가 태어난 후 공항 근처로 이사하여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외국으로 진출한다는 꿈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대통령 경호실이 좋은 직장이라고는 하나 이러한 마음을 누르지는 못했다. 정인형 경호처장님(10.26사태 때 작고), 안재송 부처장님(10.26사태 때 작고)과 이민을 상의한 결과 독일과 캐나다에서 초청받게 되어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노병직 선생님이 캐나다를 추천하셔서 캐나다로 마음을 정했다.

1977년 7월 29일 아침식사를 대충 끝내고 우리 식구는 노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김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생후 8개월된 용석이를 안고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미지의 세계인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다시는 한국 땅을 되밟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하니 3명의 식구를 보내는데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970년대에는 먹고 사는 일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기회만 되면 누구나 이민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 이민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어, 고국 방문이란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기에 공항에 배웅나온 온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했다. 마치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말이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군대 후배 최서묵의 도움으로 공항수속은 비교적 쉽게 마치고 비행기까지 배웅을 받아 한국 땅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이니 만큼 생소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당시 한국에는 국외선 비행기(KAL이 이때까지만 해도 생기지 않았음)가 없어 노스웨스트(Northwest Air Lines)를 타고 일본에 가서 캐사이 퍼시픽(Cathay Pacific Air Lines)으로 환승해야만 했다. 초행인 데다가 승무원들이 모두 외국인이었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다행히 최서묵이 비행기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몇 가지 적어 주어 필요할 때마다 용이하게 써 먹었다. 외국인 승무원의 친절함과 배려에 우리는 감사할 뿐이었다. 기내에서 용석이의 얼굴을 쳐다보니 엄마, 아빠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하게 자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아내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게는 왜 이민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결심이 서 있었기에 마음을 정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훌륭한 태권도를 외국에 보급하여 국위를 선양을 하고 내 가족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성공치 못하면 절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고국을 떠날 수 있었다.

서정길 tkdnews@korea.com

서정길
tkdnews@korea.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