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포 지관의 이병규 사범과 연배이신 남가좌동 지관의 정운산 사범님과 꽤나 다정히 지냈다. 정운산 사범님의 이단옆차기는 송무관에서 제일 높이 잘 차는 것으로 유명했다. 본관에 오시면 나와 술내기 시합을 자주했는데 내가 항상 지지만 자신의 형편이 나보다 더 낫다고 술값을 내주었다. 항상 정운산 사범님을 생각하면 그리움이 앞선다. 내가 한국을 떠날 무렵 남양 쪽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실력으로 보았을 때 아까운 태권도의 귀재였다.

우리 세 명은 송무관의 트리오(trio)로 모든 공식, 비공식 태권도 경기에서 항상 심판을 같이 보았다. 특히 1973년 제1회 세계태권도대회에서도 함께 심판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 심판들의 복장을 태극문양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상의는 하늘색, 하의는 분홍색으로 만들었기에 술집의 웨이터를 연상하게 하는 복장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 국기원까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기에 남들의 눈을 의식 안 할 수 없어 참 창피하였다.

당시 선배 사범님들 사이에 미국으로 가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남철우 형님, 문승재 형님, 이득찬 형님, 임주 씨 모두 미국에 가셔서 성공하셨다. 지금 모두 70세가 넘으셨으리라. 선배님들은 외국 이민을 준비하느라 수련을 더욱 열심히 했었다. 나도 사범 생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이영식(가명) 사범과 함께 그 대열에 끼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 서부 지역 타코마(Tacoma)를 목적지로 이민수속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그 즈음 김운용 총재님이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에 근무하고 계셨기에 경호실에서 근무할 태권도 사범들을 선발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 나도 선발이 되어 대통령 경호실에 취직이 되었고, 미국 진출의 꿈은 접게 되었다. 송무관에서는 나, 무덕관의 한흥태, 지도관의 정인화 등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청와대 경호실 근무는 나에게는 천운과 같은 기회였다. 입사 후 2개월간 군대생활과 같은 병영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태권도 교관으로 박해만 사범님이 우리와 함께 병영생활을 같이 했다. 박 사범님은 워낙 탱크처럼 건장하신 분이었고, 항상 좋은 인상을 갖고 계셨기에 우리에게 이 분보다 더 좋은 지도자가 없었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내가 사는 밴쿠버에 오시면 옛날 얘기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2개월 간의 교육을 마친 후 나는 경호실 경호처 경호과로 배속되어 대통령 출타 시에는 언제든지 출동을 해야 했다. 마음을 느긋이 놓고 지낼 수 없는 긴장이 연속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경내 생활은 사격연습과 태권도 수련으로 이뤄졌고, 초동 타격대 같은 팀웍(teamwork)을 목표로 하시 하처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갔다.

숙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 와도 집 뜰에다 사격판을 만들어 공기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했다. 공기권총은 독일에서 직수입한 성능이 꽤나 좋은 것이었다. 10미터 거리에서는 살상이 가능한 공기권총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김포공항 주변이라 나무가 많고 참새들도 많았다. 연습 시 참새들이 사격 목표물이 되었기에 우리 집 근처에는 참새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서정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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