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총재의 사무실로 권 사범님과 함께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이틀 후 김 총재는 스케줄에 없던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증서를 수여하던 고단자들은 진행을 멈췄다. 김운용 총재는 강단에 오르더니, 증서 하나를 찾아 그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수여가 끝나자 그는 강단을 내려갔다. 호명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 분의 돌발적인 행동에 얼이 나가 있었다. 나는 태권도계의 최고위 인사 앞에 서 있었다. 대단한 영광의 순간이었다. 권 사범님과 다른 고단자들도 전혀 계획되지 않은 수여였다고 말했다. 나만큼 그분들도 놀랬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국기원 매점에서 식사를 하고, 식당 위에 있는 태권도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박물관에는 태권도와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투어가 거의 끝날 무렵,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는 내 팔을 채다시피 박물관 중앙에 있는 쇼케이스(display case)로 끌고 갔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요!”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국기원을 건축할 당시의 모습을 찍은 큰 사진 앞에 멈춰 섰다. 거의 30년 전, 산꼭대기 위에, 나무에 둘러싸인, 혼잡한 도시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국기원 사진 앞에서 우리는 숨을 죽였다. 그 주에 우리는 서울에 있는 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했다. 권 사범님은 당신께서 앉아 1988년 하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던 자리로 우리를 인도했다.

나는 권 사범님과 함께 다섯 번이나 한국에 갔다. 그동안 나는 제2기 외국인사범교육도 이수했고, 검도와 궁술을 배웠고, 도자기 만드는 법도 배웠다. 방문 중 USNTF(the United States 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교육 비디오를 제작했고, 오랜 침묵을 깨고 나이 오십에 선수로 검도 경기에도 나갔다. 대구시 근처 산속에 있는 절에서 수련을 했다. 매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고, 태권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한층 더해져 미국으로 돌아갔다. 가장 추억으로 남는 것은 태권도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사범님과 함께 귀중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과 태권도 가족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권 사범님이 하신 말씀 중에 ‘유단자들이 유급자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말씀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제자들이 고단자가 될수록,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갈수록 예상 외의 행동을 하는 것은 ‘태권도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제자들이 스승인 나에게 대들기도 하고,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다. 심지어 제자들은 스승이 없으면 자신들이 더 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술 더 떠 자신들이 내게서 태권도를 배웠다는 사실까지 부인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일이 생겨도 결코 낙망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너는 언제나 그들의 아버지야 -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그 사실은 아무도 부인 못해!”

‘충성심’이란 오랜 세월동안 사범님과 나 자신의 관계를 통해 생성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권 사범님을 단지 도장 운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조언자(mentor)로 생각했다. 그 후 나는 그 분에게서 운동을 배웠고, 그 분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되었다.

많은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듯이 우리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서로 상처를 준  적도 있다. 대화도 끊고 감정을 삭이는 시간이 필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곤 서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나는 스승님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사범님의 친절함을 악용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의 관계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사범님이 지시하는 일을 모두 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그 분의 결정에 아무런 질문 없이 따를 수 있냐고도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분이 지시했다는 것 외에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 분이 나의 스승(the Master)이라는 것으로 모든 답을 대신할 수 있다. 만약 위와 같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된다면, 그들은 서둘러 자신들도 실천한 적이 없는 ‘충성심’(loyalty)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할 것이다.<끝>

번역=서정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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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우리는 외국인 사범들의 수기를 통해 태권도가 그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권도는 그들의 삶에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와 같은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인생철학과 같은 것이었다. 태권도를 통해 인생관이 바뀌고, 자신들의 삶에 변화를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주국에 사는 우리는 외국 태권도인들의 자세에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온 태권도의 영적인 면(spiritual aspect)을 다시 찾아야 한다. 다음 기회에 소개할 Norbert Mosch 사범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매우 예지가 뛰어난 태권도 지도자다. 몇 주 후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다시 재회하는 날을 기다리겠다!

토마스 페리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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