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전국체전 태권도 경기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태권도경기장을 빠져나오다 발길을 멈추게 한 곳은 다름 아닌 테니스경기장이었다.

여자부 복식전 열기가 경기장 밖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코트를 둘러싼 수많은 관객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렇게 많은 관중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경기 관람에 집중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경기장에서는 중간 중간 아쉬운 탄성이나 요란한 박수소리가 일시에 터져 나오곤 했다. 출전선수를 비롯한 모든 경기 관계자, 관객들이 경기에 흠뻑 취해있는 모습에서 스포츠의 힘이 느껴졌다.

경기 중 한 선수의 어설픈 플레이로 공이 네트 가까이에 높이 떴다. 테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100% 찬스였다. 하지만 공격 선수가 너무 강하게 내려친 나머지 공이 상대방 라인 밖으로 나가버렸다. 완벽한 찬스에서의 안타까운 실책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관중석 반응 역시 아쉬움과 기쁨으로 엇갈렸다.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는 ‘저 선수 엄청 욕먹겠는걸!’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실수한 선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을 뿐 아무도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모두 태권도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일들이라 부럽기까지 했다.

올해 전국체전 태권도 경기에서도 예외 없이 시도태권도협회 관계자들은 경기장으로 난입하고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경기 중인 선수들을 향해 을러대는 관계자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심판들에게는 “XX야! 판정이 왜 그따위야?” 라고 외쳐댔고 선수들에게는 “xx야! 차라니까 뭐하고 있어 xx야!” 등 욕설이 난무했다.

올해 전국체전에서 처음 사용된 KP&P사의 강도감지호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한 시도협회 전무이사는 KP&P 관계자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과 협박을 5분 이상 했다. 그들에게 주변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어 보였다. 경기 관계자들도 무질서한 행동에 대한 제재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달래느라 애쓰는 모습이 간간히 목격됐다.

사실 이런 상황은 태권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무덤덤해진 일이다. 언성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이제 시작했구나. 내일은 더 심할걸?’ 이라는 반응. ‘내일은 00지역에서 들고 일어나겠는데…’ 하는 관측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한 태권도인은 “화가 나지 않아도 일부러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많다. 다음 경기와 내일 경기를 염두에 둔 액션”이라는 말도 했다. 이미 이런 일들이 태권도경기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각 시도 대표들이 스포츠 실력을 겨루는 전국체전에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경기장을 욕설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비교육적이고 추악한 장면을 지켜보는 선수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지 암담할 뿐이다.

경기장에 난입하는 시도 관계자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뿌리뽑기 위해 대한태권도협회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대표자회의에서 협조해 주고 질서를 지켜달라는 부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규정을 만들고 원칙을 세워 제재해야만 근절될 일이다. 대한태권도협회가 무엇이 두려워 매년 선수들과 관람객, 국민들 앞에서 이런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신병주 기자>
  

신병주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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