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동유럽 파견 시범을 다녀와서 (상)

KTA(대한태권도협회) 국가대표시범단이 폴란드, 세르비아, 헝가리 등 동유럽 세 나라에 태권도와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시범단을 선발했다. 13일간의 일정에 참여할 인원은 21명. 처음 해외에 나가는 단원이 절반 이상이나 되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차근차근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호흡도 맞추면서 시범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다.

드디어 9월 17일 이른 새벽 공항에 출국 비행기에 올라탔다. 첫 번째 방문 국가는 오랫동안 외침에 시달리다 이제 그 아픔을 치유해 가며 발전하는 폴란드. 전쟁의 아픔과 음악이 공존하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첫 시범을 갖게 되었다.

사실 출국 전까지 폴란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 단지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2대 0으로 첫 승리를 거둔 국가라는 것 밖에는. 바르샤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창밖으로 내가 여태껏 생각해왔던 유럽의 모습은 어디 가고 으슥하고 썰렁한 느낌이 나를 맞았다.

숙소는 바르샤바의 중심에 위치해 폴란드를 상징하는 높은 건물과 마주보고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이 형제의 국가라며 지어준 문화과학궁전 (The palace of Culture and Science). 실상은 옛날 우리나라의 조선총독부 건물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반면 폴란드는 철거 대신 문화과학궁전 주위에 보다 높은 현대식 건물을 지어 문화과학궁전이 안 보이게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든 숨기고 싶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다음날 영국국제학교에서 첫 시범이 있었다. 폴란드 주재 각국 관료들의 자녀들과 외국인들이 다니는 이 학교엔 한국인 학생들도 꽤 많다고 했다. 오후 3시쯤 학교에 도착하여 시범장소를 안내되었다. 생각보다 협소하였고, 딱딱한 마룻바닥이어서 우리는 우레탄이 깔려 있는 야외에서 시범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시차 때문인지 단원들은 하나 같이 몸이 무거워 보였다. 최대한 준비운동으로 땀을 빼고 신화 기본연합동작으로 첫 시범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잠시 음향에 문제가 생기면서 삐거덕거리더니 단원들이 약간의 실수를 하였다. 다시 심호흡과 서로의 격려 속에 평정심을 되찾았고 무사히 시범을 마칠 수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로 이동하는데 그곳 학생들은 우리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싸인과 기념촬영을 요구해 그나마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있을 폴란드오픈대회 개막식 시범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부족했던 부분을 연습하고 컨디셔닝을 하였다.

첫 시범을 아쉬움으로 마친 다음날 오전 휴식을 취한 후 심기일전, 우리는 두 번째 시범 장소로 이동하였다. 폴란드오픈대회는 생각보다 경기장이며 참가규모며 빈약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관중이 한 명이든 수천 명이든, 장소가 좁든 넓든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시범을 보일 의무가 있었다.

시범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격파된 송판에 얼굴을 맞아 피를 흘렸다. 피가 눈썹을 지나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파트와 파트가 연결되는 부분이라 치료를 하지 못한 채 격파에 들어갔다. 급하게 손으로 피를 훔쳐봤지만 흐르는 피는 멈출 줄 몰랐다. 태연한척 격파를 했지만 완벽하지 못한 모습으로 퇴장을 해야 했다.

마음 편히 치료할 수 없었다. 쉴 틈 없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인원은 부족한 상황이라 간단한 치료만 하고 시범을 이어나갔다. 머릿속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자 하였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시범 후반쯤에 김미라 단원도 부상을 당하였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나와 김미라 단원은 근처 병원으로 이동하여 치료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단원들은 모구 한 방에 모여 모니터링을 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범의 성공을 다짐하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다음 시범에선 꼭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 거라 확신이 들었다.

연이은 시범으로 피로해진 우리는 하루 동안 바르샤바 시내를 관광하면서 폴란드의 문화를 몸소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폴란드는 낭만주의 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작곡가 쇼팽이 태어난 나라다. 이를 기념해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공원을 조성하고 주말마다 연주회도 열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우리 시범단도 그 공원을 찾았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야외 잔디에 편히 앉아 한 시간 가량 듣는 시간도 가졌다.

지리적 여건으로 폴란드는 외세의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잦은 전쟁으로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으나 옛 모습을 복원하여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구시가, 신시가를 두루 돌며 폴란드가 낳은 요한 바오로2세, 퀴리 부인 등 많은 위인들의 흔적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KTA 국가대표시범단 주장 최정환

<계속>

최정환 tkdnews@korea.com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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