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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길 5백리(9. 마지막회)시인 김용택의 마을로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6.16 13:45
  • 호수 641
  • 댓글 1

   
▲ 임실군 덕치면에 있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집. 주인이 비운 집에 관란헌(觀瀾軒)이라는 현판이 객을 맞아 주었다.
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金龍澤)을 안다. 그의 시(詩)와 글[散文]을 제법 읽었고 그의 친지[文友]들이 시인에 관해 쓴 글도 보았으며 그의 삶의 발자취도 어느 정도 안다.

김용택의 시에서는 농약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풋풋한 과일 야채의 맛이 나고, 더러운 물이 섞이지 않은 깊은 산 계곡물의 청정함이 흐른다.

김용택은 나를 모른다. 전혀 모른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끝자락에 그의 고향마을 방문계획을 놓았다. 어디 처음부터 알고 태어난 사람 있는가. 살면서 알아가고 뜻이 맞으면 친구가 되는 것이지. 김용택을 만나 서로의 형편이 허락하면 제한없이 삶에 관해, 시에 관해 강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김용택이 사는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남원을 떠났다. 하룻밤 신세를 졌던 S모텔. 최근에 대대적인 수리를 한 탓인지 깨끗하긴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손질은 미흡했던 모양. 아침에 일어나서야 바퀴벌레들과 같은 베개를 베고 동침했음을 알게 됐다. 허허!

더 재미있는 일은 모텔 입구 접수창구 안쪽이 작은 방인데 주인 내외가 교대로 거기 누워 손님을 맞고 보내는 바 아침에 나갈 때는 돈 받을 일이 없어 그러는지 “잘 쉬고 갑니다” 인사를 해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쳐다보기는커녕 눈도 뜨지 않았다. 잠이 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웬일인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헛, 허허허!

버스를 타고 오수(獒樹)를 지나 임실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막 시작한 아침나절. 임실읍 남쪽 끝에 자리잡은 군청에 들러 관광지도 한 장을 얻어 가지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청사를 나서며 경찰관 복장을 한 젊은이 두 명에게 물어보았다.

“덕치면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고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젊은이 A: "청사 뒷문으로 나가셔서 서쪽으로 가시면 되고요, 거리는 한 5km 정도 될랑가 모르겄네요.“
젊은이 B: "아녀, 이 사람아. 덕치가 얼마나 먼디 그려. (나를 보며) 정확헌 키로 수는 모르겄고요. 아무튼 솔찮이 멀구만요.“

나도 사실은 조금 전에 얻은 지도를 보면서 A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내심 부지런히 가면 김용택 시인의 동네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 천천히 걸어서 돌아와도 충분하리라 넘겨짚고 있었다. 따라서 B의 말이 좀 꺼림칙하긴 했으나 큰 차이는 나지 않으리라 여겨져 별 생각 없이 덥석 읍내를 빠져나왔다.

덕치면을 가려면 청웅면(靑雄面)과 강진면(江津面)을 차례로 지나가야 한다. 군청을 떠나 2km 이상을 걸었을 무렵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강진까지 15km! 그럼 목적지까지는 20km가 넘을 테고, 지도에 의하면 중간에 산을 하나 넘어야 되니 시간이 더 걸린다고 보면, 거의 하룻길이잖아!

할 수 없지, 그냥 밀고 나갈 도리 밖에 더 있겠나. 처음 만나는 마을 청웅은 관광지도로 볼 때 아주 작아 보이니 만일 식당이 없다면? 거의 하루를 굶으며 걸어야 될지도 모르겠군. 극기훈련 하는 셈 쳐야지 뭐.

역시 산길이 문제였다.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은근히 체력소모가 컸고 길게 뻗어나간 내리막에서는 발바닥 앞쪽에 문제가 생겼다. 체중과 배낭 무게 때문에 걸을 때마다 발이 앞으로 밀렸기에 통증이 점증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나 힘들게 청웅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아침식사는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하나 밖에 없는 한식당이 겉보기에는 지저분하고 허술해 보였지만 음식맛은 괜찮았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계속 강행군, 강진을 2km쯤 남겨 놓았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두 발의 총성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돌아보자 건장한 사내가 지프에서 내려 언덕을 오르더니 새 한 마리를 주워 차에 타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리 인가가 없는 들판이지만 대낮에 총으로 짐승을 마구 잡아가다니. 상당히 화가 났지만 이미 차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무법천지로군.

강진에 도착하자마자 치안센터에 들어가 따졌다. “성능이 대단해 보이는 총을 가지고 백주대낮에 짐승을 마구 포획해도 되는 거냐”고. “지금은 해로운 새를 박멸(撲滅)하는 기간입니다. 그 분은 틀림없이 자격증을 소지한 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강진에서 6km 이상을 더 나아가 일중(日中)에 ‘겨우’ 도착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막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와 매화를 발견, 이산가족처럼 반가웠다. 구례를 떠난 이후 타이밍을 잘못 맞춘 탓에 볼 수 없었던 매화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내 여행의 피날레를 축하해 주는 듯 수줍은 미소로 예쁘게 손짓하고 있었다.

일중에서 섬진강의 지류를 따라 안쪽으로 한참 들어간 장산(長山, 진뫼) 마을에 김용택 시인의 집이 있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紫雲英)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후략)”

김용택은 ‘섬진강’이라는 제목의 시집에서 ‘섬진강’이라는 제목의 시를 무려 스무 편이나 실었다. 그래서 그를 ‘섬진강 시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의 집은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가운데에 있었다. 빈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물으니 정확하게 집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디 선생님은 지금 안 계시고 할머니만 계셔요. 전주에 가셔서 금방 안 오신다 했대요.”

시인은 멀리 출타했고 노모 역시 어디 마실 나가셨는지 그의 집은 비어 있었다. 바람에 덜컹거리는 유리창과 왼쪽방 인방(引枋) 위에 걸려있는 ‘관란헌(觀瀾軒)’이라는 글귀만 지친 나그네를 쓸쓸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관란헌’은 퇴계 이황(李滉) 선생의 ‘도산잡영(陶山雜詠)’에 나오는 시 제목. ‘물을 구경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으니 필히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는 맹자의 말과 ‘밤낮 그치지 않고 흐르는 물에서 끝없는 도(道)의 본체를 생각한다’는 성현들의 말이 담겨 있는 글귀이다.

되짚어 내려가 동구 밖에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전주로 이동했다. 이미 밤이었고 청승맞게 내리는 비가 마지막 여행길을 추적추적 적셔주고 있었다.<끝>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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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2009-09-28 02:26:03

    최박사님평소에아끼고좋아하는사람입니다섬진강에멋과맛을기거하고감칠정을표현하니촌놈의심경을흔드시는구려청하한표현이휴면세계의영감으로치우하기는아깝구려"말미"의청승맞은비보단화창한단비를보고싶구려,최형?일련의국기원상황을보시면서본인은명세기국민의공복과 오랜기자역활을하시면서보았던모습에견주어실망자체구려아니갈"길"를갖구려^돌아갑시다^뭘바라고있나요우리마당으로가시죠하고화끈 추하지맙시다 건강하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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