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임기가 곧 끝나요. 당신 미국에 간다고 했었지요.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가서 태권도 보급을 합시다.”

 갑작스런 제의에 나는 내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기에 정중히 사양했지만 나와 정이 든 대사는 한사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 역시 그동안 그의 아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정이 많이 들었었다. 다행히 미 8군에서 익힌 영어실력 덕분에 대사와 나는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미국에서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한테 태권도를 배운 미군 제자들이 귀국하면서 나와 함께 미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열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꼴만 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다. 대사는 떠나기 며칠 전에 나에게 쪽지 한 장을 내 놓았다.

  “마에스트로 구(구 사범). 이거 가지고 외무부에 가서 출국허가를 받으시오.”

미국 비자가 늦어지기도 했지만 나 역시 꼴만 대사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며칠 간의 고심 끝에 결심을 했다. “그래, 가자, 아르헨티나로.” 결심 끝에 외무부를 찾아가 이민업무 담당자에게 쪽지를 내놓았다.

“ ? ”
“이거면 여권발급이 된다던데요.”

 담당자는 의아한 눈초리로 쪽지를 내미는 나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류에는 외국대사가 나의 보증인으로 되어 있었으니.  유신정권이던 그 당시만 해도 외국 초정장이나 특별한 공무 외에는 여권을 발급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권을 발급받은 나는 약혼한 지 채 6개월도 안된 나의 약혼녀에게, 내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곧 초청을 할 테니 걱정 말라며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드디어 한창 겨울로 접어들던 1977년 11월 3일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가족들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사랑하는 약혼녀를 뒤로 한 채 달랑 보따리 하나들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그것이 항상 내 걱정을 해주시던 나의 아버님과의 생애 마지막 이별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무엇이 나로 하여금 무모하리만큼 그렇게 정든 고국과 가족을 두고 낯선 타국으로 떠날 그런 용기를 가지게 했는지. 젊음? 태권도?

그랬다. 그 시절 나는 오직 태권도에 정진하고 보급하는 것만이 내 일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타 보는 여객기, 집채만 한 보잉 747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하늘로 치솟았다. 아르헨티나가 멀다는 것은 알았지만 비행기로 꼬박 이틀을 걸려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는 벌써 남미 특유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구영채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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