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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매화 꽃길 5백리(7)환상의 길 만끽하며 남원으로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6.01 16:36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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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죽녹원 정문 앞으로는 제법 큰 개천이 흐른다. 영산강(榮山江)의 상류인 담양천. 이 지역의 지반(地盤)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그랬나, 옛날부터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자주 범람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조 26년(1648) 부사 성이성(成以性)이라는 분이 천변(川邊)에 흙으로 둑[堤防]을 쌓고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옛날에도 괜찮은 지방관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 행정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정황을 추리해 보면 이렇다.

거의 해마다 하천이 범람하면 농민들의 집과 논밭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제대로 대책을 세우자면 돌로 제방을 쌓아 물의 범람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짧은 거리도 아니고 2킬로미터나 이렇게 석축을 쌓자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야 했을 것이다.

국가의 재정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을 터여서 모두가 안타까워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던 차에 성 부사가 과감하게 흙으로 둑을 쌓은 다음 나무를 심는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겼던 모양이다. 뒤를 이어 활종림이라는 부사도 보강공사를 펼쳐 완성도를 높였다 한다.

이때 심겨진 나무들은 팽나무 느티나무를 비롯,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등으로 그 지경이 길게 늘어서게 되었고 5만 평방미터의 넓이를 자랑하게 되었다. 담양읍 객사리와 남산리 일원에 걸쳐 큰 나무숲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 4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이제는 거대한 장관(壯觀)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나무들이 열병식(閱兵式)하듯 일직선으로 서있지 않고 불규칙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아주 예술적이기도 하다.

거기다 바닥은 고운 흙길이어서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목이 1백77그루나 된다고 한다. 이곳의 이름이 ‘관방제림(官防堤林)’. 이름은 좀 촌스럽다. 그래도 담양에서는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럼 그렇지, 지난 2004년 산림청이 실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숲길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조용함이다. 조금 전의 그 죽녹원과는 달리 쾌적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요란스럽지 않은 몸짓으로 자연과 하나 되어 움직인다. 그래서 길에 기품이 고여 있다.

관방제림 길이 끝나갈 무렵, 문득 오른쪽을 보니 어느덧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아길’이 다가와 저만치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게 아닌가! 갓 사귀기 시작한 수줍은 연인들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걸어가던 두 길은 관방제림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팔짱을 끼듯 하나가 된다.

‘메타세쿼이아’. 흔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도 어쩌다 발견할 수 있는 원뿔모양의 키 큰 나무이다. 잎이 무성할 때 물론 아름답지만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에도 촘촘한 가지들이 좌우대칭으로 보여 동화책이나 시집(詩集) 등에 삽화로 가끔 등장할 만큼 멋지다.

식물에 관심이 있는 친지들로부터 ‘아주 잘 자라는 나무’라고 소개받은 적이 있다. “가운데 중심축을 이루는 본체는 일직선으로 뻗어 올라가는데 1년에 1미터씩 자란다”고 들었다. 그래서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도 붙었다는 것이다. ‘수삼(水杉)나무’라고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나무는 매우 특이한 ‘이력서’를 지니고 있다. 까마득한 옛날 지구상에 널리 퍼져 있던 메타세쿼이아는 환경이 바뀌면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그 존재는 만주지방에서 나는 호박(琥珀)과 미국 서부해안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이 증명해줄 뿐이었다.

그러다가 1945년 중국의 양자강 상류인 사천성에서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메타세쿼이아가 발견됐고 생명력이 강한 특성에 맞게 널리 퍼져 나갔다. 그래서 이를 ‘죽었다가 되살아난 화석식물’이라 부르며 은행나무와 소철(蘇鐵) 역시 화석식물이다.

그 이름과 관련해서는 ‘메타’가 후(後)라는 뜻이고 ‘세쿼이아’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추장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처럼 신비한 메타세쿼이아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누가 뭐라 해도 모습이 단정하고 귀족적이다. 깔끔하기는 단아한 여성 같다.

담양읍 중심부에서 전북 순창(淳昌)을 향해 북동쪽으로 한없이 뻗어 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그 가운데서도 금월교(錦月橋)까지가 최고다. 나무들의 건강상태도 좋거니와 차들이 다니지 않아 걷기에는 그만이다. 낙엽은 벽돌색이고 소나무 잎처럼 생겼다. 길 양쪽에 수북이 쌓여 있어 융단처럼 푹신하다. 이런 상태만 계속된다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 그 길을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즐거움은 금월교를 지나면서 끝이 났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각종 차들의 텃세 때문이었다. 어느 지방이건 국도나 대표적인 지방도로 치고 차들이 안 다니는 길이 있겠나. 그래도 다른 길들은 옹색하긴 해도 인도를 이용,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 금월교에서 순창 가는 길은 도무지 걸을 수 없다. 우람하게 성장해버린 가로수 메타세쿼이아들이 인도를 점거해 버린 것이다. 승용차들이 지나갈 때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인데 대형 트럭이나 탱크로리가 스치듯 달려갈 때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어렵사리 금성문화회관 앞까지 이르러 걷기를 포기해야 했다.

순창행 버스를 기다렸으나 쉽사리 나타나지 않아 지루했다. 전방에 있는 군사분계선의 철길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절규한다 했지. 지금의 내 처지에서 ‘나는 걷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다.

버스를 오랫동안 기다리긴 했으나 그래도 걸어야할 길을 버스로 주파해 버렸기 때문에 순창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남원까지 갔는데도 아직 한낮이었다.

덕분에 그 유명한 광한루(廣寒樓)를 꼼꼼하게 살피며 구경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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