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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매화꽃길 5백리(6)대나무의 고장 담양으로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5.26 11:29
  • 호수 638
  • 댓글 0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윤동주의 ‘자화상’ 중에서)

전남 구례의 장수촌으로 알려진 ‘상사마을’을 찾아갈 때 상황이 꼭 그랬고 내 마음이 꼭 그와 같았다.

구산리에서 구례읍을 향해 가다 보면 산모퉁이를 돌아 반달처럼 오른쪽으로 휘어져 들어간 아늑한 곳에 상사마을은 작은 산을 등지고 햇볕 가득 받으며 한가로이 누워 있었다. 거기다 앞쪽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고 깨끗한 호수까지 품에 안겨 있으니 장수마을로는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장수의 비결이 우물에 있다 했으니 그 안에는 ‘달과 구름이 흐르는 하늘’은 물론 ‘파아란 바람’이나 계절의 정기(精氣)가 담겨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산 중턱에 기계로 파놓은 우물이 큰 기대를 외면하듯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아름다운 전설 하나쯤 있을 것 같기도 하건만 물어볼 사람 하나 없이 텅빈 마을. 이렇게 한가로워서 오래들 사시나?

쓸쓸하고 허수히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짧게 살건 오래 살건 삶이 이런 것 아니겠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도서 1장 2, 3절) 코헬레트(진리를 전파하는 자)라고 불린 솔로몬왕의 말이다.

당초 계획은 구례에서 곡성(谷城)을 지나 전북 남원으로 북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가 대나무 숲과 아름다운 길 등으로 이름난 담양(潭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광평과 냉천을 거쳐 구례읍내로 들어가 일단 광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아,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뭐든지 고생을 해봐야 좋은 줄, 고마운 줄 안다니까. 걸어서 3일 가까이 걸릴 길을 한 시간 만에 주파해 버리니 얼마나 편리한가.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다시 버스로 20분이 걸렸다. 광주를 떠날 무렵은 직장인들이 느긋하게 귀가 길에 들어설 보랏빛 시간이었으나 담양에 도착하자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편리하긴 해도 버스는 역시 체온이 없는 문명의 이기(利器)일 뿐. 숙소나 식당 등 당장 필요한 현실에 관해 철저하게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그네를 어두운 밤길에 내팽개쳐 버리고는 휑하니 달아났다.

대나무 숲이 많은 마을이라 그런가. 아니면 재임기간이 끝난 겨울이 아직도 지배권 행사의 미련을 벗어 버리지 못해서 그런가. 담양의 3월 밤은 사뭇 추웠다. 시간 여유는 있었지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싫어져서 ‘숙소와 식당 정하기’의 개인적인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식당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손님이 많으면 괜찮은 집이고 숙소는 일류 호텔이 아닌 한 경찰서 근처에 있으면 믿을 만하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이다. 이 노하우대로 실행한 결과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방문 대상은 담양의 대표 브랜드 죽녹원(竹綠園). 걸어가면서 평소 지니고 있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드넓은 평지에 자연스럽게 서있는 대나무들. 그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대나무 잎 부딪치는 소리.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 죽림칠현(竹林七賢). 어릴 적에 살던 시골집의 대나무 밭. 죽마고우(竹馬故友)…

그러나 언덕, 아니 작지만 산에 자리잡고 있는 실제의 죽녹원은 머리 속에 그려 보았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잘 정비되고 가꾸어져 있었다.

담양읍 향교리 산 37의 6, 그리 높지 않아 걷기에 적당한 5만평의 산 위에 빼곡히 들어찬 대나무들. 이를 잘 볼 수 있도록  전체를 휘감아 돌면서, 사이사이를 서로 연결해 주는 여덟 갈래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운수대통 길, 샛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 길, 추억의 샛길, 성인산 오름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등으로 재미있게 이름도 붙여두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길은 시멘트나 목재로 포장되어 있었고 철저하게 울타리를 쳐 놓음으로써 관람객들은 대나무로부터 격리되고 말았다.

이해할 수는 있겠다.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무데서나 솟아오르는 죽순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질서의식이 좀 떨어지는 내방객들로부터 소중한 대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도 설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친근감이 사라지고, 자연의 품속에 포근히 안기고 싶었던 소박한 기대가 야박하게 거절당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 성형수술을 한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값비싼 명품으로 치장한 연예인을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래서 죽녹원은 이미 충분히 유명해져 있었다. 영화나 TV 드라마, 이름난 연예프로의 무대로 사용되었고 전직 국가원수도 다녀갔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 관광철이 아니었음에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쏟아져 들어와 시끌벅적 왁자지껄 우당퉁탕 소란을 피웠다. 지난날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요즘 같으면 우리 국민이 전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무례하지 않나 생각된다.

누가 뭐래도 죽녹원은 훌륭한 곳이다. 담양의 자랑이다. 듣자하니 군(郡) 당국이 관리한다 하니 입구에 유치한 곰 인형 같은 조형물이나 만들어 상업주의적으로 빠질 생각 말고 좀더 자연친화적으로 손질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죽녹원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떡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신식당’에서 모처럼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3대째 주인이 바뀌어 이어져 온 식당인데 처음 문을 연 것이 일제 강점기인 1909년이니 꼭 백년이 되는 역사를 자랑한다.

남도 음식이라 그런지 조금 짜게 느껴져 주인의 며느리 되는 분에게 “짠맛과 싱거운 맛의 두 가지 타이프로 구분하여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나왔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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