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5일 비행기를 내린 에세이사 공항 곳곳에서 기관총을 어깨에 멘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南美) 모든 나라들이 군정(軍政)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불안한 정정(政情)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무술인들을 우대해주며 경호원이나 기관원들의 교관으로 채용하곤 했었다.

 결국은 몇 년 후인 1982년 말비나스(Malvinas. 일명 포클랜드) 전쟁에 패함과 동시에 군정은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군정에 참여했던 많은 인사(人士)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나에게 태권도를 배웠던 그 영사는 아마도 그것을 걱정했으리라.

타고난 운동체질인 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커서는 위대한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운동이나 하다 나쁜 길로 빠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으셨지만 나는 벌써 중학생 때 태권도 초단을 땄다.

 그렇게 운동, 태권도 도장에 살다시피 하며, 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한양대학교 공대 기계공학과를 다니던 중이었다. 체육대학에서 손짓했다. 이론적으로 배우고 운동을 해, 먼 훗날 한국의 태권도를 이끌어갈 재목이 되라는 체육대학 총학생회장의 권유로 체육대학으로 학적을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태권도학과가 없었으나, 나는 학문으로 체육을 배우며 태권도 수련 또한 게을리 하지 않던 차에 군 입대를 했다.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나자, 미 8군에서 태권도 도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어 나는 곧장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니, 1970년으로 태권도 4단이었다.

 7년간의 미 8군 태권도 사범생활을 접어놓고 신혼의 꿈을 아르헨티나에서 펼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내가 아는 아르헨티나는, 한국에서 지구 중심을 꿰뚫으면 나온다는 세상에서 가장 먼 나라이고, 끝없는 초원과 축구, 또한 열정적인 탱고의 나라라는 것뿐이었다.
 그런, 생소한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은 결코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미군들만 배우는 미 8군 도장에 민간인 신분으로 나에게서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주한 아르헨티나대사관의 스트라스 버거 영사였다.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태권도 수련에 매우 열성적이었던 이 사람이 어느 하루는 부탁하기를, 자기 나라 대사가 대사관저에 와서 아들을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너무나도 간곡한 영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태권도에 흠뻑 빠졌던 영사가 자기의 상관인 대사에게 태권도에 대해 꽤나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인연이란 그런 것일까. 그로인해 나의 나머지 삶을 꿈속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던 아르헨티나라는 먼 타국에서 보내게 될 줄이야.

아무튼 나는 주한 아르헨티나 뻬레스 꼴만(Perez Colman) 대사의 아들을 성의껏 가르쳤고, 그의 아들도 참 열심히 배웠다.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으로 국기원에서 실시한 품 심사에서 1품을 따내 동행한 대사는 물론 나도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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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채 사범
1946년생, 한양대 체육대학 졸업, 1977년 아르헨티나 이주, 라 플라타시 태권도장 운영,
1978년 아르헨티나협회 결성, 아르헨티나협회 기술감독

구영채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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