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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매화 꽃길 5백리(4)화개장터에서 구례로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5.06 13:20
  • 호수 636
  • 댓글 0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광양에선 삐걱삐걱 나룻배 타고/ 산청에선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사투리 잡담에다 입씨름 흥정이/ 오순도순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왜 그런지 ‘화개장터’에 가면 이것저것 살 것도 많고 훈훈한 인심이 흐를 것 같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하나 되는 넉넉함이 넘실댈 것 같고,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낭만도 있을 것 같았다.

상당한 기대감에 휩싸여 아침 일찍 행장(行裝)을 꾸려 장터로 향했다. 장터 근처에 하동군수가 세워 놓은 비석이 길손에게 도우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비문(碑文) 내용인즉, “이곳은 멀리 삼한시대부터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해오다가 섬진강에 수문이 생겼을 때쯤에는 ‘화개관’이라 불리며 발전, 1726년 무렵에 절정기를 맞아 유명한 장터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후 사회구조와 기능이 변화하면서 힘을 잃게 됐고 지금은 추억과 향수에 젖어 역사의 이끼만을 더해갈 뿐”이라는 것이다.(비석은 '91년 8월 15일 세워짐)

삼한시대라면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때. 거의 기원전 시대에 해당하며 1726년은 영조 2년. 실로 짙은 이끼를 느끼게 하는 역사가 서려 있다 하겠다. 명성과 기대에 비해서는 규모가 좀 작아 보였다. 그 넓이가 눈대중으로 5천 평 정도. 취급하는 물건도 거의 농산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독특하고 멋진 낭만이 있는지 어떤지는 좀더 긴 시간을 머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나그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매력은 발견할 수 없었다.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광광안내센터를 찾았으나 문이 닫힌 상태였다.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상인들과 대화, 여기도 원래는 ‘5일장’이었으나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탈바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으로 화개장터 구경은 종료. 구례로 향했다.

학생시절부터 느낀 것이지만, 시골에서 길을 물을 때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 동네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고 물으면 예를 들어 20리 정도 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10여리를 가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으면 또 20리를 더 가야 된다고 대답하기 일쑤. 그런데 여기서 비슷한 경우를 보았다.

화개장터 주민들은 쌍계사까지 4km 떨어져 있다 한다. 화개장터 바로 옆 구례 가는 큰 길로 들어서면서 도로표지판을 보니 쌍계사까지 5km, 1백20m쯤 떨어진 관광안내판에는 7km라고 적혀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이들이나 공공기관의 관계자들이나 비슷하군!

조금 걷다 보니 큰길 옆에 눈길을 끄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엑스포는 여수에서, 관광은 하동에서.’ 여수 시민들이 보면 얼마나 속상할까. 여수시가 막대한 돈과 정성을 들여 엑스포 준비를 하고 있지만, 관광객들은 몽땅 하동으로 빼돌려 실속을 챙기자는 이야기. 20여 년 전 서울올림픽 때 일본 사람들이 꼭 같은 얘기를 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던가.

이런 식의 구호가 실제로는 아무 효과도 없다고 생각된다. 잘 따져 보면 알 수 있는 노릇이다. 여수와 하동은 가장 가까운 이웃. 실속 없이 서로 감정만 나빠질 뿐이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따라왔다. 이웃사촌이라는데, 너무 각박하다고 느낀 마음 탓인가, 사뭇 추위가 엄습해왔다. 날카로워진 강바람에 겨울이 묻어 있었다. 강의 여울 따라 봄이 오는 길목에 복병처럼 매복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소소리바람. 몸과 마음이 스산하다.

구례(求禮) 지역으로 들어섰다. 노란 꽃을 잔뜩 안고 있는 산수유(山茱萸)가 자주 눈에 뜨인다. ‘가장 발 빠르게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傳令)은 과연 누구일까?’ 매년 이른 봄이면 늘 이런 궁금증이 떠오르곤 했다. 매화일까 산수유일까? 우리 동네(아파트 단지)에 산수유는 많아도 매화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정말로 알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비슷한 크기의 산수유와 매화가 같은 장소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꽃이 피어 있는 정도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먼저 도착했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쪽에 ‘전령’ 타이틀을 주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이모저모 비교를 해 보아도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결과는 무승부. 전령 타이틀은 매화와 산수유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듯.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꿀의 보유량에 있어서는 매화가 단연 우세. 벌들이 모두 매화꽃 속에만 파묻혀 있었다. 단순히 꿀 때문인가, 아니면 꿀과 향(香)에 취해 비몽사몽하고 있는가.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서 교편생활도 한 적이 있는 시인 안도현이 그 박빙의 승부를 가려 놓고 있다. ‘산서 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 주조장(酒造場)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 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 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 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매화꽃의 깨끗한 판정승이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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