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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매화 꽃길 5백리(2)화개장터에 이르는 환상의 꽃길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4.17 10:59
  • 호수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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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 4월을 T.S. 엘리오트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느꼈다. 나른한 가사(假死)상태를 오히려 원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일깨우는 4월이야말로 가장 잔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시인 이대흠은 “섬진강의 봄이 환하고 서럽다”고 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환한 봄기운이 언 마음에 참빗질을 하고,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꽃들에 정을 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라 한다.

굳이 그런 어린 시절의 각박한 추억을 들추지 않더라도 만개한 매화로 인해 온 누리가 환하게 피어난 길을 혼자서 하염없이 걷다보면 ‘서럽게’ 느껴지는 시인의 감성이 때로 핍진(逼眞)하게 마음의 줄을 울린다.

청매실농원을 떠나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 쪽으로 북상(北上)하는 길은 젊은이들 표현대로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화개장터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마을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다.

매화꽃 가지 하나 하나를 보면 활짝 핀 꽃송이들이 함초롬하지만 나무 전체를 보면 소복(素服)한 여인처럼 아름다운 기품이 넘치고, 마을 전체를 바라보면 숨이 가쁠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매화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소동파(蘇東坡)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당·송 팔대가’ 중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은 매화를 신선에 비유하면서 ‘매화 활짝 피다(梅花盛開)’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남해의 신선이 사뿐히 땅에 내려/ 달밤에 흰 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들기네.”

고려시대의 문신 최자(崔滋)는 더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얼음 같은 피부에 눈으로 옷을 삼고/ 향기로운 입술은 새벽이슬의 구슬을 마시네/ 아마 속(俗)된 꽃송이들의/ 봄에 붉게 물드는 것이 싫어서/ 요대(瑤臺)를 향해 학(鶴을) 타고/ 날아갈 듯하구나.”

요대는 옥으로 된 집으로, 신선들이 사는 곳을 이른다 하므로 소동파와 최자는 서로 만난 적도 없건만 같은 느낌을 지니고 있었음이 재미있다.

한 30분쯤이나 걸었을까. 어느 집 앞에서 농기구를 손질하는 노인이 기품이 있어 보이기에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청매실농원은 개발이 잘 되고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매화 자체는 이 아랫마을 쪽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 마을의 매화는 그 주변이 사람의 손을 덜 타서 좀 더 자연스럽고 꽃 자체도 더 탐스러울 것입니다.”
“이곳의 지명 ‘다압면(多鴨面)’은 발음이 썩 좋지는 않은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까?”
“옛날부터 강에 오리들이 엄청나게 날아들어 그렇게 됐습니다. 아마 먹이가 풍부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화개장터에서 절반이나 걸었을까. 워낙 늦게 청매실농원을 떠난 탓에 관동(官洞) 마을을 지날 무렵 해가 서산에 걸렸다. 20여 가구나 됐던가? 전형적인 시골의 아담한 마을.

집집마다, 마을의 빈터마다, 뒷산 전체까지 온통 새하얀 매화밭이다. 저녁 준비를 하는지 두어 집에서 하얀 연기가 천천히 낮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떤 것이 연기이고 어떤 것이 매화인지, 연기가 피어오르는지 매화꽃이 흩날리는지 구별이 되지 않고.

짙은 향기에 담뿍 젖은 마을 위로 노을은 눈처럼 내리고, 고즈넉함이 맑은 샘물처럼 고인 곳으로 평화가 무르녹으니, 외로운 나그네는 속세를 잊고 취한 듯 어린 듯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정취(情趣)는 ‘악의 꽃’으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세계와도 맥을 통하고 있었다.

“이제 바야흐로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 속에 감돈다;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바이올린은 상처받은 마음인 양 떤다/ 하늘은 큰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다.”(저녁의 조화· Harmonie du Soir 의 전반부에서)

항동(項洞)과 죽천(竹川)을 지날 무렵에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인가(人家)가 없으니 편의점 따위 잠시 쉬어갈 곳도 있을 리 만무하고 가로등마저 없는 깜깜한 시골길. 실제와는 달리 깊은 밤처럼 느껴졌다.

몸은 마음을 따라 가는가. 많이 지친 건 아니었으나 주위 환경 탓인지 걷는 것이 그렇게 팍팍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도 어둠 속에 보초처럼 드문드문 서 있는 매화나무들이 순한 짐승의  숨결처럼 희뿌연 빛을 뿜어내고 있어 그나마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화개장터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도착해도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겠지. 적지않이 낙심이 되어 금천을 지날 무렵, 주방에만 희미하게 불이 켜지고 업무를 마친 식당(금천가든- 그래서 그냥 지나칠 뻔했음)을 발견, 민생고도 해결하고 잠시나마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오아시스’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풍기 출신의 주인아주머니는 가족처럼 성의껏 대해 주었다.

밤늦게 화개장터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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