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슈파카쎄의 융자담당으로 여전히 근무하고 계시는 길레 씨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그의 사무실을 혼자 찾아가 포르츠하임 새 종합 체육관 건립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서류가 구비되는 대로 갖추어 오겠지만 건물 매입과 재건축에 필요한 전체 자금이 160만 마르크인데 절반인 80만 마르크를 대출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지난 1982년 이후 몇 회의 아파트 매입관계로 융자를 신청했던 나에게 어떤 담보물이 있는지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곽금식 사범.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충당하시겠습니까?”
“성인이 된 두 아들과 함께 직접 짓겠습니다. 그리고 그간 저축한 것도 있으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신용거래를 해왔고 길레 씨도 체육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새로 종합체육관을 짓는데 필요한 은행 융자를 이번에는 쉽게 받을 수 있었다.

2000년 5월 11일 포르츠하임의 메리안쉬트라쎄(Merianstr.) 6번지 건물 3, 4층을 매입하였다. 독일에 온 지 꼭 29년 되는 날 재산목록 제 5호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간 계획해온 대로 재건축 작업에 들어가 4개월 만에 내부 시설을 완성했다. 탈의실, 샤워실, 화장실을 벽동 구조로 만들고 약 280m²의 도장, 100m²의 도장 겸 체조실은 무릎 보호를 위한 탄력적인 재질로 설비하였으며 200m² 크기의 헬스클럽에도 모든 기구를 리복(Reebock)으로 배치하고 최고의 시설로 꾸미고자 노력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테리아가 보인다. 까만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고 3, 4층 모두 합하여 58개의 창문 전부를 새로 갈아 끼웠다. 창문 덕분에 실내는 더욱 밝아져 완공된 체육관은 보다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2000년 10월 14일 ‘곽 체육관(Kwak Sportschule)'이란 간판을 내걸고 포르츠하임에 새로 체육관을 개관하는 날이다. 많이 홍보가 된 덕분에 개관하는 날 아침부터 방문객들로 붐비기 시작하여 집사람과 두 아들은 물론 도장의 사범들 모두 총동원되어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분주했다. 오후 4시부터 시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홀에 사람이 가득차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이번에는 시범 프로그램을 아래층에 마련된 모니터로 중계하기에 이르렀다.

개관하던 날 적어도 800여 명의 방문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짐작된다. 일요일인 다음날에는 시범을 반복하였는데 체육관 관련 인사들과 늘 중요 행사 때마다 찾아준 지인들이 두 아들이 보여준 시범이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후 왈써 씨가 나에게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26년 전 당신이 포르츠하임에 와서 고생하던 때와 지금 당신의 모습은 몹시 대조적이군요. 아마 당신 같은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왈써 씨는 내 손을 꽉 부여잡고 한동안 흔들었다. 그리고는 유유히 문밖을 빠져나갔다. 만 85세의 연세였지만 여전히 정정하였으며 항상 꼿꼿한 자세의 왈써 씨였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은 마치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체육관 내부는 고요했다. 두 아들이 마지막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집사람과 손을 잡고 체육관 아래 위층을 돌아보며 이번에는 우리가 해냈다는 감격에 서로 와락 껴안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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