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태권도연맹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사표를 냈다. WTF 사무국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이름은 제리 링(Jerry Ling). 싱가포르 출신으로 2004년부터 WTF와 관계를 맺었다. 제리 씨 외에 양진석 사무총장(미국)과 여비서 김 아무개(독일) 씨도 외국 국적이지만, 모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이다.

WTF에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제리 씨의 경우에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업무능력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었기에 WTF에 꼭 필요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제리 씨는 WTF를 그만 둔 이유가 개인적인 일 때문이라고 말했다.

WTF는 지난 9일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 ‘심판’, ‘국제’, ‘회계’, ‘홍보’ 등 5개 부문에서 신입 및 경력직원을 선발한다고 공고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WTF 노조 파동' 이후 해당 부서장이 해고되는 사태를 맞으며 사실상 업무추진에 지장을 받아온 경기, 심판부의 직원을 뽑는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세계태권도연맹 사무국

현재 WTF는 총재, 사무총장 아래 2명의 사무차장이 있고 그 아래에 경기, 심판, 국제, 홍보, 총무 등 5개 부서가 있다.

이 중에서 경기, 심판부장은 앞서 말한 대로 1년 가까이 공석인 상황이다. 스포츠 국제조직인 WTF에서 경기부와 심판부는 가장 중요한 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요한 부서 책임자가 왜 1년 가까이 임명되지 못했던 것일까.

WTF는 그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추측과 분석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 중에는 WTF 내에서 김운용 전 총재 계열로 분류됐던 경기부장(이상헌)과 심판부장(유해민)을 해고한 후 바로 경희대파, 또는 조정원계로 분류되는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 중요한 자리에 다른 쪽 사람들을 임명하는 것도 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재 WTF는 물론 조정원계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철오 사무차장 정도가 이 범주에서 벗어난다. 조 총재가 2004년 처음 WTF에 부임했을 때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4년 전인 2005년의 경우에는 WTF 인적 구성은 몇 개의 계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조정원 총재의 부임과 함께 WTF에 들어온 김환표 총무부장, 강석재 홍보부장 등을 넓은 의미의 조정원 직계로 분류한다면, 김운용 전 총재 계열로 이상헌 경기부장, 유해민 심판부장이 있었고, 관료출신인 문동후 사무총장이 있었다. 임윤택 사무차장은 서울시협회를 근거로 독자적인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최만식 사무차장과 박정애 국제부장은 별도의 계파라기보다는 WTF 내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사무국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초 문동후 사무총장과 임윤택 사무차장이 비슷한 시기에 물러났고, 문 총장 후임으로 경희대 출신 양진석 사무총장이 부임하면서 ‘경희대 연맹’의 색을 더했다. 그 후 2008년 노조사건 등으로 김운용 계열로 분류되던 이상헌, 유해민 부장이 해고되면서 WTF 내에서 별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계파의 모습은 현재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러한 WTF 인적 구성의 조정을 주도한 사람으로 경희대 출신 김환표 총무부장이 지목된다. 김환표 부장은 조정원 총재의 비서실장으로 WTF와 관계를 맺은 후 총무부라는 요직을 담당하면서 실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재 WTF 사무국은 최만식 사무차장이 담당하는 사무1국 산하에 국제부와 홍보부, 총무부가 있고, 김철오 사무차장이 담당하는 사무2국 산하에 경기부와 심판부가 있다. 그런데 조직 구조상으로 사무1국 산하의 한 부서인 총무부가 자신의 주 업무인 총무, 회계, 인사 등의 범위를 넘어 다른 부문에까지 간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WTF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WTF가 준비하고 있는 5월 프로대회의 기획은 경기부나 심판부가 아닌 김환표 총무부장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프로대회의 준비 기획안과 준비 과정이, 전문성의 부족으로 수준미달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검토한 기획안 내용은 평소 김 부장이 보여주던 샤프한 모습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태권도 자체와 대회 기획에 대한 몰이해 때문으로 해석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올 10월에 있을 WTF 총재 선거 결과, 만약 총재가 바뀌게 된다면 현재 직원 중에서 남아있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냐는 점이다. WTF가 조정원 총재의 사람으로만 채워지다 보니 조 총재 측이 물러날 때엔 모두 함께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제조직으로서 WTF의 업무 연속성은 보장받기 어렵다.

김정길 회장에서 홍준표 회장으로 바뀌었어도, 사무국 내부는 전과 별다른 변화없는 업무 연속성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 대한태권도협회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WTF가 과연 신규 직원채용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가?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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