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4.16 금 20:01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후편(8)비와 서풍(西風)의 노래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2.05 09:56
  • 호수 625
  • 댓글 0

‘제주올레’와 섭지코지를 걷던 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날씨가 좋았으나 다음날은 지극히 대조적으로 악천후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기는 싫어서 일주를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오래전부터의 습관에 따라 아침식사는 거른 채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제주도 북쪽해안의 바람은 대단하다. 오랜세월 바람에 시달려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팽나무의 모습

참으로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이틀 전 밑바닥이 떨어져 접착제로 임시변통을 한 운동화에 우비(雨備)도 없이 하루 종일 걷기로 작정하고 무모하게 빗길을 나서다니! 지난봄에는 우비를 제대로 준비해 왔으나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무게 때문에 고생만 했는데 이번에는 우비 없이 고생하는구나.

조금 걷는 사이 등산이나 트레킹에 상당히 경험이 있어 보이는 분들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왜 그런 복장으로 빗길을 걷습니까? 그대로는 오래 못 걸을 겁니다. 무리하면 몸을 상하게 되실 것이구요.”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기는 싫습니다. 당장 레인코트를 구할 수도 없으니 어떡하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가까운 마트에 가셔서 비닐 우비를 사십시오. 배낭이 있으니 두 개를 사셔서 앞뒤로 겹쳐 입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분들의 조언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값도 한 개에 천원, 부담없는 가격이었다. 경험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끈질기게 내리는 비, 마을을 벗어나 벌판으로 나서자 더욱 세차게 몰려오는 바람, 비록 완만한 경사지만 길게 뻗어 올라가는 길, 매우 힘이 들었다.

그냥 걸었다. 빗방울을 들고 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 모진 바람 때문에 좌우를 살피기도 힘들었다. 맞바람, 그러니까 서풍이었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걷는 단순동작 이외에는 바람이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간혹 주변 풍경 중에서 참고자료로 쓰기 위해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으나 사진을 찍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염없이 이어지는 단순동작의  궤적 속에서 유일하게 분주한 건 머리 속뿐이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들을 회상(回想)하며 걸었다.

가장 오랫동안 머리 속을 맴돌았던 것은 영국 시인 셸리의 서풍부(西風賦; Ode to the West Wind). "오, 거친 서풍, 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그 보이지 않는 그대의 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이/ 마치 마법사로부터 도망치는 유령들처럼 쫓겨 다니는구나.“로 시작되는 시.

존 키츠와 함께 19세기 초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P.B.셸리. 그는 타고난 천재성 때문에 현실 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했거니와 그의 시 자체도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서풍부에서 셸리는 거센 바람을 ‘저물어 가는 해(年 )의 만가(挽歌)’ ‘통제할 수 없는 자’ ‘길들일 수 없고 빠르고 자존심 강한 존재’ ‘거센 정신’ 등으로 묘사하며 좀 어렵긴 해도 명작을 남겼다.

“내 입술을 통해 잠깨지 않는 대지에 예언(豫言)의 나팔이 되라!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로 서풍부는 끝을 장식한다.

천하의 셸리, 30살에 아깝게 세상을 등진 천재도 이 탐라의 비바람 속을 걸었더라면 서풍부와 같은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쉬지 않고 걸어 구좌읍 세화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1시. 지도를 보니 앞으로 3시간 이상은 가야 식당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세화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작정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한 식당을 보니 점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드나드는 것 같아 가까이 가 보았다. ‘명천 해장국’. 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이 나를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옳거니, 이 식당이 좋다는 뜻이로군!

과연 그랬다. 매우 시장해서 실제 이상으로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좀 접어주더라도 맛은 최고였다. 지금까지 먹어 본 해장국 중에서는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없었다. 세화를 지나가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장미에도 가시는 있는 법. 나처럼 옷이 젖었거나 행색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은 환대(歡待)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솜을 천으로 싼 방석이 아니고 왕골로 만든 가벼운 것이기에 안심하고 젖은 옷을 내려놓았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정색을 하고 큰소리로 나무란다. 틀린 말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니 방석이 좀 젖더라도 금방 마를 수 있을 텐데, 야단을 쳐가며 다른 손님들 앞에서 망신을 주어야 하나?

욱하는 마음에 그냥 일어서서 나오려 했으나 존경하는 장자(莊子) 선생께서 불쑥 나타나 조용한 음성으로 말리셨다. “이 사람아. 생전의 나는 지금의 자네보다 더 보잘 것 없는 몰골로 살아 자주 망신을 당했다네. 작은 일이니 참게. 이미 추수(秋水)편에서 배우지 않았나?”

그랬었지. “그래, 나(바람)는 휙휙 울리며 북해에서 일어나 남해로 들어간다. 그러나 내게 작은 손가락 하나를 세우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걸 이기지 못하고 누가 내게  발길질을 해도 역시 이기지 못하지. 하지만 저 큰 나무를 꺾고 큰 집을 날려 버리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지. 갖가지 작은 일에는 이기지 않는 편이 크게 이기는 것이지.”

장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제대로 속상하고 옹골지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