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국기원 승단심사장에서 한 응심자의 품새가 끝나자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시각장애인 홍관수(32)씨가 뒤늦게 태권도를 배워 1단에 응심, 태극 2장과 8장을 자신있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홍씨는 홀로 심사를 봤다. 심사를 보러온 모든 응심자들과 가족, 태권도 관계자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모아졌다.

홍씨는 “혼자서 하느라 너무 빨리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이충영 나사렛대 태권도선교학과 교수는 “일반인보다 더 나은 실력으로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해 마지않았다”며 분위기를 설명했다.

홍씨는 현재 충남 천안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만학도다. 지난 학기에 교양과목으로 태권도 수업을 받게 되면서 태권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원인 모를 병을 앓아 시력을 잃게 됐지만 항상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다.

운동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한다는 그는 오래 전부터 태권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침 대학 졸업반이 돼 시간적 여유도 생겨 마음먹고 도전을 하게 되었다.

홍씨는 수업을 통해 태권도를 배우다 교양수업만으로는 태권도의 기술을 따라가기가 힘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이충영 교수를 만나게 됐다. 

이 교수는 지난해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태권도 교본’을 만들기도 했으나 시각장애인 제자는 처음이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품새 동작을 배울 수 있겠는가"라는 교수의 물음에 홍씨는 “교수님의 몸을 만져가며 동작을 익히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수업시간마다 이 교수의 몸을 더듬고 품새 동작 하나 하나를 머릿속에 새기며 익혔다.

또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홍씨는 애써 익힌 동작을 금방 잊을세라 매일 밤마다 복도에 나와 태권도 품새를 연습하고 다음 수업시간을 통해 잘못된 동작들을 고쳤나갔다.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감이 많아졌다”는 홍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심사 합격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가능하다면 태권도를 계속 수련해 단을 높여가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경 기자  kek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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