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왈써씨가 회사로 나를 불렀다. 왈써씨는 포르츠하임에 약 300여명의 직원을 둔 금시계 공장을 가지고 있는 이 지방의 대단한 유지였으며 2차대전 당시 장군으로 활약했던 분이었다. 특히 절도 있고 규율이 잡힌 태권도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 왈써 부인이 태권도를 하는 것을 몹시 좋아하고 늘 뒷받침해주었다.

곽금식 사범.

집안의 경사가 있으면 우리 가족을 초청해주는 등 그야말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주시던 분이었다. 우리 체육관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하시기도 한 왈써씨는 내가 찾아가자 왜 그동안 자기를 찾지 않았냐고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어제 부인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하시면서 바로 회사 거래처 은행 대출 담당자와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서류를 모두 지참하고 회사로 다시 찾아오면 은행 담당 직원도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하였다.

왈써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그보다는 왠지 걱정이 앞서 자금이 융자할 금액의 3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왈써씨는 지금 세상에 누가 그렇게 많은 개인자금을 가지고 있느냐면서 그간 열심히 일해 모은 성의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은행 대출이 되건 되지 않건 왈써씨의 사무실을 나오는 나의 기분은 이렇게 대단한 분이 나를 인정해 주신 것이 기뻐 하늘을 날것만 같았다.

이틀이 지난 후 왈써씨는 다시 나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문을 여니 은행 직원이 오기 전에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자며 손수 건축비 견적서에 쓰인 것을 본인의 노트에 옮겨 적고 계셨다. 연세가 일흔 하나이신데 게다가 비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일을 직접 준비해 주신 것이다.

은행 직원에게 보여줄 융자금액에 관한 서류, 해야 할 말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니 역시 왈써씨는 군인 출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처럼 왈써씨는 매사에 몹시 정확하고 철저한 분이셨다.

은행 직원을 만나던 날은 용모도 단정히 하고 정장을 갖춰 입은 후 약속 시간에 미리 도착하여 서류와 할 말들을 점검하고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약속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은행의 대출담당 총간부인 길레(Gille)씨가 나타났다. 첫인상은 불친절하고 딱딱하게 보였으나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레씨는 왈써씨의 추천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며 긍정적으로 내가 준비한 서류들을 검토해 보았다.
“체육관 융자 치고는 상당히 큰 금액인데 자본금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요?”
이에 왈써씨가 말을 받았다.
“곽사범 대단해요. 이미 3분의 1이 준비되어 있어요.”
길레씨가 어떻게 그렇게 돈을 모았느냐면서 놀라자 왈써씨는 “곽 사범과 부인이 열심히 저축해 왔고 한국에서도 필요하면 돈을 송금해 온다”고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보유 관원수와 이에 해당하는 매달 수입의 내용을 회계사가 서류적으로 증명한 것이 크게 참작되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고 앞으로도 체육관이 번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인정되어 융자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현재 새로 매매하게 되는 건물 전체를 은행에 담보로 맡기기로 했다. 길레씨는 나의 신변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니 생명보험에 가입하도록 권장하면서 국가에서 사업 창시자나 재창시자를 위한 이자가 저렴한 융자, 본인이 일하고 있는 슈파카쎄(Sparkasse)의 융자 상품을 안내하며 융자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쉽게 결정난 대답에 기쁘기보다는 행여 상부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나 길레씨가 자리를 떠나자 왈써씨는 그가 직책이 높은 간부이고 융자담당 책임자이니 걱정할 것 없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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