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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후편(4)제주도의 단결심과 배타성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9.01.05 10:16
  • 호수 621
  • 댓글 0

   
우리나라에는 막강한 단결력을 자랑하는 ‘조직’이 3개 있다. ‘조직’이라는 말이 좀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면 ‘단체’ 또는 ‘세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집단이므로 굳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 이름만 나열해 보면 이렇다. ①고려대 교우회 ②해병대 전우회 ③호남 향우회(나열하는 순서가 은근히 신경 쓰여 할 수 없이 가나다순으로 함)
이들 조직이 과연 얼마나 단합이 잘 되고 막강한 파워가 있으며 회원들의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제대로 힘을 써주는지 여부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피력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들이 매우 이름이 나 있다는 사실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필자는 여기서 하나의 집단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제주도 도민회가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주위에 제주도 출신 후배들이 제법 많은 편인데 하나같이 동향 사람들을 잘 챙긴다. 결코 요란하거나 떠들썩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실속 있게 도움을 주고받는다.

얼마 전 공식적인 모임에서 제주도 출신 탤런트 고두심씨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제주도민들의 협동심을 칭찬해 주었더니 “아마 인구가 적어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골짜기의 준말)이 깊다’ 했던가. 이 단결심이 긍정적인 측면이 많아 아름답게 보이는 줄만 알았는데 지나친 배타심 때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세상 일이란 참…

서귀포에서 성산(城山) 사이의 중간쯤에 표선(表善)이라는 마을이 있다. 읍내 중심가의 약방에 들러 붕대를 사면서 가까운 곳에 괜찮은 식당이 있느냐고 물으니 대뜸 길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가 ‘하늘식당’을 찾아보란다. 점심시간이 약간 기운 탓인지 식당 안은 비교적 조용했다. 음식을 주문하면서 나누는 짧은 대화, 주인 아주머니의 말투 속에 전라도 사투리가 슬쩍 묻어나왔다.

“아주머니, 실례지만 제주도 토박이십니까?”
“아닙니다. 고향은 전라도 광주입니다.”
“그럼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스물세 살 때 제주도 청년 만나 결혼하면서 왔으니 30년도 더 됐네요.”
“그럼 이제 제주도 사람 다 되셨겠네요. 고향 광주보다 여기가 더 좋으시겠습니다.”
56세의 식당 주인 이영자씨는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아들딸 낳고 괜찮게 사는 편입니다마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제주도로 시집오지 않겠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곳 사람들의 지독한 배타성 때문입니다. 양파 껍질 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마지막 마음의 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아요. 그래서 늘 외롭습니다.”

광주 출신의 주인 아주머니를 33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망감과 외로움의 늪에 빠지게 한 그 지독한 ‘텃세’는 이곳 출신들에게까지도 위협적인 칼이 될 수 있는 모양. 제주도에서 15년, 서울에서 30년을 산 성산 출신의 전직 기자 서명숙씨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온다.

“기자생활 하느라 제주 땅을 자주 밟지 못했고 전국적인 이슈를 쫓아다니느라 정작 고향의 현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유난히 자존심 강하고 배타적인 제주 사회에서 자칫하면 ‘경계인’이 되기 딱 좋은 출신 성분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향(同鄕) 출신에게까지 ‘경계인’이라는 ‘주홍글씨(Scarlet Letter)’의 낙인을 찍어 따돌려 버리기도 하는구나! 좀 생각해 볼 문제인 듯싶다.

화제를 바꿔보자. ‘서귀포 70리’라는 말이 있다. 서귀포에서 남원을 지나 표선에 이르는 길과 그 주변을 말한다. 지금은 표선이 제주, 서귀포 같은 큰 도시들과 중문, 성산 같은 유명짜한 지역들의 위세에 눌려 숨을 죽이고 지내지만 옛날에는 그게 아니었다.

조선조 초기인 태종 16년. 중앙정부는 제주도를 한라산 북방의 제주목(牧)과 남방의 대정현(大靜縣), 동방의 정의현(旌義縣)으로 나눠 3분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정의현 현청이 표선면에 있었다. 벌써 6백년 전의 일이다.

제주목을 위쪽 꼭짓점으로 하는 2등변 삼각형을 그리면 아래 변의 왼쪽에 대정, 오른쪽에 정의 두 고을이 각각 자리잡게 되는 셈이며 두 지역의 가운데가 서귀포.

17세기 말에 간행되었다는 ‘남천록’이라는 자료에 의하면 “현(정의)에서 의귀(남원 근처)까지는 30리, 의귀에서 서귀포까지는 40리가 된다.”고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서귀포를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고 정의현을 중심에 두고 거리를 말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제주도 해안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서귀포 70리’가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가며 회자(膾炙)되는 것은 이 지역의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기 때문일 터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를 상찬(賞讚)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죽했으면 이례적으로 가요에도 등장했겠는가. 조명암이 노fot말을 짓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서귀포 칠십리’를 가요 황제 남인수가 불러 히트시킨 게 1940년대의 일.

사족(蛇足) 하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지명을 옛날에는 순 우리말로 불렀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을 ‘고불’이라 하고 그보다 작은 것을 ‘불’, 더 작은 것을 ‘마을’, 더 작은 것은 ‘물’이라 불렀다. 오늘날의 고을이라는 명칭은 옛 ‘고불’이 변한 것이다.

그 후 한문이 들어온 뒤에 지명 및 지방의 칭호가 한문식으로 바뀌었다. 지역의 중요성,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선조에서는 주(州)와 부(府), 군(郡)과 현(縣)을 구별하여 주와 부는 대개 동급이었고 그 아래 군이 딸리고 군 아래 현이 배치되었다.

이에 따라 부에는 부윤(府尹) 혹은 부사(府使), 주에는 목사(牧使),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 또는 현감(縣監)이라는 수령(원)을 두어 다스리게 했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군(郡)이 없다. 제주목과 정의현의 행정적 관계가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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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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