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해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된 이연걸(리렌제· 李連杰· 45)은 12살 때인 1975년 중국전국무술대회에서 성인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중국은 이 무술신동을 북경무술학교에 입학시켜 10명의 중국무술 고수에게 지도를 맡긴다. 이연걸은 여기서 중국무술의 정수(精髓)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이연걸을 가르친 고수의 한 사람 문혜풍(먼호이펑·門惠豊·71) 노사(老師)가 한국을 찾았다.
문 노사는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의 딸이 현재 한국인과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문 노사의 딸인 문감홍(먼간홍·門敢紅·38) 씨는 1996년 우슈 한국 국가대표로 중국에 무술을 배우러 간 양성찬(40) 씨에게 무술을 지도하다 사랑에 빠졌고, 둘은 1998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고 2001년부터는 서울 잠실에 도장(태극무술원)을 열고 중국무술보급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두 사람 사이에서 딸이 둘(6살, 2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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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혜풍 노사가 딸, 사위, 손녀와 자리를 함께했다. |
문 노사의 사위이자 제자인 양성찬 씨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슈 태극권 부문 금메달을 따냈고, 최근에는 문 노사가 교수로 있던 북경체대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 노사의 아들인 문봉위(먼펑웨이·門鳳偉·33) 씨는 중국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태권도에 빠져 용인대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베이징에서 태권도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문 노사와 함께 오지는 못했지만, 그의 부인 감계향(간뀌샹· 桂香·68)도 유명한 무술고수. 이연걸을 가르친 10대 고수 중 한 명이다. 문 노사의 집안은 말 그대로 무술 명가(名家)다.
문 노사는 무술로 유명한 고장인 하북성(河北省) 천진(天津) 정해현(瀞海縣)에서 태어났다. 둘째 형으로부터 장권(長拳) 계열의 무술을 배우기 시작해 태극권(太極拳), 형의권(形意拳), 팔괘장(八卦掌), 팔극권(八極拳), 연청권(燕靑拳), 미종권(迷踪拳), 번자권(蒜子拳) 등 중국 무술을 두루 섭렵했다.
연청권은 수호지(水滸誌)에 등장하는 108 영웅의 한 명인 연청(燕靑)이 완성시킨 무술로 알려져 있으며, 미종권은 이연걸이 주연을 맡아 국내에서도 개봉된 영화 ‘무인 곽원갑’의 주인공 곽원갑(元甲, 1868~1910)이 사용한 무술로 알려져 있다. 번자권은 명맥이 끊어질 뻔하다가 문 노사가 유일한 전인으로 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여러 무술에 통달한 문 노사지만 특히 태극권에서 일가를 이뤘다. 태극권은 보통 진식(陳式)을 원류로 해서 양식(楊式), 오식(吳式), 손식(孫式), 무식(武式) 등의 유파가 유명하다. 중국정부는 1956년 태극권의 대중화를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태극권인 ‘간화(簡化) 24식 태극권’을 만들어 국민건강을 위해 보급했다. 중국의 공원에서 아침마다 사람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간화 24식이다. 간화 24식을 만들 때 북경체대 학생이었던 문 노사가 시연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평생을 무술을 배우고 익히는데 바친 문 노사는 마침내 태극권을 바탕으로 자신이 익힌 무술을 종합하여 동악태극권(東岳太極拳)을 만들어낸다. 수(守). 파(破), 리(離)라는 무술의 수련 단계에서 마침내 리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0년 1월 1일 새천년을 맞아 중국의 문화적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 문 노사가 태산(泰山) 정상에서 동악태극권을 시연하는 모습을 중국 CCTV를 통해 위성으로 전 세계에 내보내기도 했다.
현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태극권과 중국 무술 보급을 하고 있는 문 노사는 지난 11일에는 경원대에서 ‘태극권의 무술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을 했고, 오는 27일에는 중국문화원에서 태극권 특강을 한다.
문 노사에게 물어볼 것들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 자신의 아들이 태극권이 아닌 태권도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남권북퇴(南拳北腿)라는 말이 있는데, 발차기가 특히 발전했다는 점에서 태권도는 중국의 북방 무술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태권도는 현재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 아들이 태권도를 좋아하고 열심히 수련하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현재는 좋아하는 태권도를 잘 배우고 가르치기 바라며, 나중에는 아들에게 내가 아는 무술을 더 많이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딸은 한국에, 아들은 태권도에 ‘시집’ 보낸 문혜풍 노사. 여러 면에서 한국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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