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여행을 통해 미국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기도 하였지만 독일을 떠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체육관 문을 열면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도 다음 계획을 세울 시간도 부족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바람직한 태권도 보급과 도장의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곽금식 사범.

미국에서 플로리다와 조지아주만 방문했지만 2주간의 여행으로 그간의 궁금증은 풀렸다. 광대한 나라에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지만 독일에서의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느새 사회에 묻혀서 익숙해진 나 자신을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미국의  태권도장이 대부분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문을 여는 반면 독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문을 연다.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운동하고 늦어도 10시면 끝이 난다. 주일에는 대부분 휴식을 취하며 세미나, 지관 심사, 태권도 대회 참가 등의 일이 생길 경우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도장을 운영할 수 있다.

주중에 열심히 운동하고 일한 만큼 주일에는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하며 다음 계획을 세우는 일이 나에게는 몹시 중요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더욱 체육관 생활에 충실하게 임했다.

1984년 3월 21일.

승단심사의 날이었다. 지금까지 수십 번 승단심사를 보았고 많은 관원들을 유단자로 배출했지만 이날만큼은 더욱 특별한 날이었다. 1974년 포르츠하임의 체육관을 인수받을 무렵부터 줄곧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지도를 해온 왈써 부인의 승단심사.

왈써 부인은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타 관원들의 모범이었다. 54세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시작하여 이후 쉬지 않고 꾸준히 체육관에서 젊은 청년들과 함께 운동해 오셨다. 60세 때 초단, 65세 때 2단을 거쳐 73세의 고령으로 3단 심사에 응시한 것이다.

그녀는 자택 지하실에 작은 도장을 꾸며 기본동작, 발차기, 품새 등 가리지 않고 꾸준히 프로그램 전부를 수년 연습한 덕분에 품새, 일보대련, 호신술을 모두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마지막 2cm 송판을 격파할 때 수도 때리기와 앞차기로 각각 모두 한 번에 통쾌하게 격파시키는 순간 심사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올바른 동기부여와 교육의 효과가 맞물려 태권도의 목표가 달성된 순간이었다. 이는 나이를 떠나서 자신을 끊임없이 테스트하며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한 결과였다.

1984년 6월

오랫동안 찾고 있던 칼스루에 시내에 새로 도장을 마련할 자리가 나왔다. 시내 동부쪽 툴라 스트라쎄 44번지였다. 초등학교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전차 정거장이 근접해 있어 시내 어디서든 접근이 용이하고 또 시외에서도 진입하는 교통로가 편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길 앞쪽에는 주차장 공간이 충분하여 체육관 장소로 적합하였다.

원래 이곳은 공장이었는데 최근까지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 주인이 세를 놓기보다는 팔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지하 500m², 1층 500m², 2층 200m²로 전체 면적이 1,200m², 약 400평의 크기에 달하였다. 이와 더불어 5개의 차고에는 10여대의 자가용을 주차할 수 있어서 체육관으로서는 그만이었다.

집주인과 흥정을 하기 전에 중개인이 건물을 사들이는데 약 60만에서 70만 마르크정도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문제는 건물을 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붕부터 시작하여 바닥까지 체육관으로 모두 개조해야 하는데 재건축 비용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었다. 지금까지 저축한 모두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갚아 나간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곽금식 사범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