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4강전에서 모두 상대에 월등한 실력차이로 손쉽게 이긴 황미진(10·부산 한신태권도장)은 경기 시작부터 자신이 있었다. 아직 전국대회까지는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참가한 부산시의 몇몇 태권도대회에서 또래들은 물론 5,6학년 언니들에게도 이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참가한 이번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경기는 미진이의 생각대로 진행됐다. 미진이는 경기 시작부터 과감하게 상대를 몰아붙였고, 점수 차이는 금세 3-0으로 벌어졌다. 미진이의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스텝과 발차기는 주위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상대방도 가만히 맞고 있지만은 않았다. 2라운드 들어 미진이는 1점을 내줬다. 그럴 수 도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상대방의 돌려차기가 미진이의 얼굴에 적중했다. 순식간에 3-3 동점. 당황한 미진이는 서둘러 공격을 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3-3 동점으로 경기가 끝났다.

심판들의 판단에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 초반에는 분명 미진이가 앞섰지만 후반에 들어서는 상대 선수의 반격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주심은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진이의 눈에 순간 이슬이 맺혔다.

미진이를 이긴 상대 선수는 와찌 유리(11·和知 優利). 멀리 일본 센다이의 아이하라(相原) 태권도장에서 왔다. 자신을 이긴 선수가 일본에서 왔다는 것을 미진이는 경기가 끝나고서야 알았다.

이번 대회에 일본에서 온 선수는 총 4명. 알고 보니, 유리는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대주였다. 일본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사범으로 활동 중인 김한로(48) 감독이 대회조직위원회에 "가능하다면 유리를 한국에서 가장 센 친구랑 붙여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유리는 작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올 초 대만에서 열린 오픈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험이 있다. 일본 국가대표 태권도선수를 10년간 지낸 아끼코 코데라씨는 “와찌 유리가 10년 후에는 일본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유리였으니, 미진이가 패했어도 억울할 것은 없겠다. 경기 후 미진이와 유리는 서로의 실력을 칭찬했다. 미진이는 “예상 외로 유리가 잘 했고, 얼굴을 공격당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유리는 “초반에 긴장한데다 미진이가 강하게 공격해 와서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시상대에 올라서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는 미진이와 유리였다. 이제 10살과 11살. 둘 다 태권도 국가대표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했다. 2020년, 어느 여름 어느 도시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한국의 황미진과 일본의 와찌 유리가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상상을 해본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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