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은 외형적으로는 각기 다른 목적사업을 가진 독립된 단체로 제각기 다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두 기구의 목적사업 중에는 긴밀한 협조가 요구되는 사안들이 많다.

특히 승품단의 해외 심사권에 관련된 사안을 들여다보면 두 기구의 협조관계가 왜 필요한지에 잘 알 수 있다. 개인이 아닌 국가협회를 통해 승품단 심사를 신청해야만 하는 ‘1군 국가'라는 제도는 1992년 국기원과 세계연맹 관계자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에 의해 제정됐다.

그러나 13년 동안 국가협회들의 구조가 상당히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없는 사실만 보더라도 두 기구의 업무협조체제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일부 실무자 외에는 '1군 국가'와 관련된 내용 자체에 대해 모르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한정서가 팽배한 일부 유럽지역 '1군 국가' 경우에는 한인 사범들이 추천한 심사를 국가협회가 거절해 국기원 단증을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고, 한인 사범들과 협회 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다.

해외 심사권과 관련해 두 기구는 상이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국기원은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대륙연맹들의 자체단증 발급 문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세계연맹은 국기원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보조비가 지난해부터 축소된 것에 대해서만 불만을 표하고 있다. 두 기구 모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상대 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내심 불만을 갖고 있는 상태다.

사실 이같은 문제들은 두 기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해 협조체제를 갖추고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진다.

세계연맹은 각 국가협회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해외 국가협회가 자체단증 발급결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고, 국기원도 해외 국가협회가 자체단증 발급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국기원 단증의 공신력을 강화하고 홍보활동을 펼쳐야 하고 세계연맹에 보다 많은 지원금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품새대회를 둘러싼 이견 역시 마찬가지다. 국기원은 품새에 대해 승단심사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세계연맹이 품새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고, 세계연맹은 경기단체가 품새 경기대회를 개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범단 창단도 갈등의 대상이다. 국기원은 세계연맹의 시범단 창단 추진 소식을 접하자 국기원의 목적사업 침해로 규정하며 세계연맹이 불필요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연맹은 국기원시범단은 한인들로만 구성한 한국대표시범단의 성격이지 국제화된 시범단 성격은 아니라며 외국인들을 포함한 국제화된 시범단을 추진할 뜻을 거듭 밝힌 상태다.

엄운규 원장과 조정원 총재는 태권도를 대표하는 두 기구의 수장이다. 엄 원장은 태권도계의 원로로서, 조 총재는 국제스포츠기구를 이끄는 CEO로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 기구의 수장은 단순히 각 기구의 수장으로서뿐만 아니라 태권도계 전체의 발전, 나아가 세계 태권도인들을 위해 제각기 해야 할 자신들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 같은 성찰을 바탕으로 제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한다면 상호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협조의 필요성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보좌하는 실무진 역시 자신들이 근무하는 기구의 입장만을 내세우기보다는 태권도의 발전과 화합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업무협조체제를 공고히 해야 태권도인들의 공감을 얻고 진정한 태권도의 대표 기구들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홍철 기자  kek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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