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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범 수기] "나는 부끄럽지 않다"[10]두 도장 3개월만에 300명 관원
뛰어 옆차기 역동적 포스터에 젊은이들 매료
  • 곽금식 사범
  • 승인 2008.10.24 16:58
  • 호수 612
  • 댓글 0

몸은 하나인데 도장은 포르츠하임, 칼스루에 두 곳이니 혼자서 지도를 하기엔 무리여서 우선 오전에 근무하는 장에 사표를 내고 체육관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두 도시를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지도한 결과, 관원들이 속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보자들이 유급자가 되면서 반을 늘리고 더 많은 수강생을 받기 위해 어떤 방법을 통해 홍보를 할까하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곽금식 사범.

곧 지역신문에 광고를 냈다. 일간지 가로 90mm 세로 75mm의 칸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을 시도해 보았지만 당시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만큼 비싼 광고비에 비하면 효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번에는 포스터를 만들어 지정된 장소에 붙이기로 하고 전문 광고회사에 포스터 광고를 문의하였다. 광고회사에서 원하는 날짜에 시내, 시외에 광고를 해주었고 이들 회사는 나름의 조직망이 있어 광고를 하기에 효과적이었다. 저렴한 광고비로 연간 10~15일 정도 광고를 의뢰하여 체육관을 홍보할 수 있었다.

대체로 성인들은 신문을 통해 접근하였고 젊은 세대와 청소년, 초등학생들에게는 길거리의 포스터가 퍽 인기를 끌었다. 뛰면서 옆차기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으로 보였는지 한창 중국 무술영화가 유행할 때라 이 인기에 힘입어 체육관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는 체육관 육성에 더 투자를 해야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칼스루에 체육관에 기초반을 한 반 더 늘리고 지금까지 없었던 어린이반을 개설했다. 개관 3개월 만에 약 200여명의 관원들이 모여든 셈인데 포르츠하임의 약 100명에 이르는 수강생들과 더하면 독일에서 생활하는데 문제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관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규모를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밤마다 운동을 마치고 자동차 뒤에 관원 모집 포스터와 풀을 싣고 시내로 나갔다. 보통 밤 10시에 체육관 문을 닫고 나가면 아직은 시내에 사람들이 붐비는 시각이라 거리의 인파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면서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하였다. 집에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일찍 집으로 들어가도 수면을 취하는 일이 전부였다.

늦은 밤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사라질 무렵 시내 상점 벽이나 가건물 벽에다 풀로 광고 포스터를 붙이곤 했다. 여러 포스터들이 즐비한 곳이어서 가끔 나중에 포스터를 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체육관 홍보 포스터가 가려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도장 홍보를 꾸준히 지속해 나갔다.

체육관 사람이 많다보니 학생, 공무원, 은행원, 비서, 회사원, 노동자 등 수강생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하루는 도장에서 혼자 안내하고 접수받고 운동하며 분주하게 지내는 나를 보고 클라우스 메르베트라는 학생이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시간에는 도장에 전화가 걸려 와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여서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클라우스는 규모가 큰 가구회사 사원으로 회사에서 경리직을 맡고 있었는데 신입관원이 찾아오면 충분한 안내와 태권도에 대한 홍보를 나 자신보다 더 효과적으로 해주었다. 나 스스로 ‘나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클라우스가 ‘사범님은 한국 그랜드마스터로 본원을 직접 운영하시고 물론 직접 가르치고 계십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안내임에 틀림없었다.

클라우스는 매일 오후 4시 퇴근 이후에 체육관으로 바로 와서 도장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체육관 운영에 관해서도 아직 독일 행정 관련업무에 서툰 나에게 현지인의 지혜를 빌려주어 당시 도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도장을 개관한 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프로그램으로 효과있게 가르치고 또 어떻게 하면 독일에 태권도를 널리 보급할 수 있을까에만 전념했을 뿐 경제적인 부분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클라우스의 의견은 수련생이 입관할 때 계좌번호를 받아 매달 은행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즉 매달 수련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련생 계좌에서 체육관 계좌로 자동이체되도록 허락서를 받자는 것이었다.

이후 새로운 신입관원이 찾아오면 변경된 입관양식을 제시하였고 점차 수련생 모두에게 확대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로써 사무실에서 현금거래를 하지 않으니 사업주의적인 인상을 주지 않아서 좋았고 덕분에 영수증을 쓰는 번거로움이 사라져 업무량이 크게 줄어들어 여러 면에서 효과적이었다. 클라우스는 안내와 접수 등의 사무적인 일들을 전적으로 도맡아 주었고 나는 덕분에 더욱 태권도 지도에 전념할 수 있었다.

30km의 간격을 둔 두 곳의 체육관은 날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서 더욱 성장하였고 이와 더불어 그만큼 일도 늘어나 개인적인 부담도 가중되었다. 체육관이 번성하여 하루하루 기쁘고 보람되었지만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집에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고 자취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어 끼니때마다 독일 식당을 이용하여 배를 채웠다. 흰쌀밥과 젓갈을 넣어 빨갛게 버무린 어머님의 김장김치 생각이 그토록 그리울 수가 없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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