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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관 교수의 중국무술 탐방기] (3)
무술의 실체는 정신인가? 무술 자체인가?
  • 류병관 전문위원(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
  • 승인 2006.04.03 00:00
  • 호수 493
  • 댓글 1

소림무술의 세계적 입지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중국인들의 상술을 나타내는 것일까?

소림사 입구는 이미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진가구(陳家溝)’ 입구의 낡은 촌락들과는 엄연히 다른 중국정부의 계획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4년 전보다 훨씬 많아진 상가와 잘 닦여진 도로, 넓은 주차장 시설에 관람 연결버스까지, 작은 기념품 가게 하나밖에 없던 진가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세계적인 무술관광 명소 소림사”를 보는 이들의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소림사는 엄연한 관광명소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의 끄덕임이 커질수록 웬지 모를 비애감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치 부처가 가로 누운 듯한 오유봉의 엄숙한 자태는 모든 악의 침범이라도 막으려는 듯 거대한 성곽처럼 앞에 펼쳐져 있고 역대 수많은 조사들을 모신 塔林(탑림)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훨씬 넓어진 앞마당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진가구’처럼 어쩌면 마음을 비우면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다시 피어올랐다.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경내를 들어서면서 소림사 안에서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4년 전 “탑구소림무술학원”의 표연단이 용인대학교 태권도 시범단과 함께 시연을 펼쳤던 경내의 수련장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나마 소림사 내에서 무승들이 수련이라도 함직 했던 유일한 공간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마무리 안 된 단청이 쓸쓸함을 더한다. 소림사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을 듯한 외톨이 늙은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다.

무공비급 대신 소림무술을 담은 DVD!

어쩌면 인간들은 어떤 역사도 자신의 방식대로만 해석하고 싶은 오만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된 역사를 조금은 더 신뢰하고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소림사는 모든 무술이 시작된 곳이요, 무림의 태두라는 그 근거 없는 아련한 믿음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더더욱 소림사에 집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꼭 절간에서 무술을 익히는 중들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소림사 자체로는 어느 곳에서도 이곳이 세계최고 무학, 소림무술의 정수를 간직한 곳이라는 느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경내 몇 곳에 소림무술의 정수들이 담겨져 있다는 DVD를 파는 스님들이 있었다. 조악한 수준의 DVD지만 온갖 소림 무공들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던 텅 빈 장격각을 바라보는 허탈감이 그래도 어느새 DVD 하나라도 챙겨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DVD를 파는 사람들도 스님복장을 한 허락받은 장사꾼들이라는 설명에 또 한 번 놀라면서……

역사 없이는 쓸 수 없는 ‘쓰인 역사’

마음을 열면 보인다고 했던가? 무술을 벗어나 소림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다시 소림사를 찾은 나에게 준 달마의 선물일까? 내 머리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술! 그 소림 무술의 근원을 왜 중들이 몸을 단련하는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 확인하려 했을까? 나 또한 무술의 겉모습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파도는 잠깐 동안의 모습일 뿐 파도의 실제 본체는 물”이라는 禪語(선어)가 떠올랐다. 무술의 본래의 목적이 강함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요,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요, 자신을 스스로 닦는 것이라면 이 자체가 선의 방편일 뿐이었을 터인데…천하 선종의 사찰에 와서 가장 높은 파도의 모습만 찾고 정작 물의 본체는 보지 않았던 셈이라는 것을 순간 깨달은 것도 다행 중 다행이었다.

‘立雪亭(입설정)’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더니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神光(신광) 慧可(혜가)는 달마의 정법을 이어받은 선종의 2조다. 河南(하남) 사람으로 龍門(용문) 香山(향산)에서 불제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달마대사를 찾아와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그때 혜가가 엎드려 달마의 허락을 청하던 곳이 바로 ‘입설정’ 이다.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달마대사의 마지막 거절의 말이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린다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혜가는 주저 없이 자신의 팔을 잘라 하늘에 뿌리자 온통 붉은 피가 날려 붉은 눈이 내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를 수 있는 용기와 극기! 어쩌면 자신의 육신을 던져 무한한 선의 정신세계를 얻은 혜가의 실행이 바로 소림무술의 근본정신이 아니었을까? 소림무술의 정법인 근육을 바꾸어 근골을 튼튼하게 하는 정런綏신의 단련법인『易筋經(역근경)』과 골수를 씻어 정욕에 오염된 五臟六腑(오장육부)와 四肢百骸(사지백해)를 세척하여 깨끗하게 하는 수련법인『洗髓經(세수경)』의 무학들, 그 『세수경』을 한어로 번역하여 소림무공의 정종이 되게 만든 혜가!

달마는 자신의 의발과 함께『세수경』을 혜가에게 전했다고 하니, 도를 위해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른 그 一念(일념)의 정신이야 말로『세수경』의 정신이요, 소림무공의 정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입설정’앞에서 한참을 서서 상념에 잠겼다가 달마조사에게 절하고 나니 옆에 있던 보살이 작은 염주를 건네준다.

그 염주를 받아들고 혜가스님에게 다시 절하고 돌아서는데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숙연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여 이렇게 감정이 바뀌자 그동안 한낱 기법의 신묘함과 신법만으로 눈에 들어오던 ‘소림오권’의 바탕들이 슬며시 살아서 뇌리 속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龍拳(용권)은 정신을 수련하고, 虎拳(호권)은 골격을 수련하며, 豹拳(표권)은 근력을 수련하는 것이다, 蛇拳(사권)은 기를 수련하는 것이고, 鶴拳(학권)은 원기를 수련하는 것”이라는 ‘소림오권’ 본래 의미를 생각지 않고 기술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내 편협함에 생각이 미치자 태극권의 건강양생의 도를 깨달았던 것과 같은 느낌도 밀려왔다.

“태권도는 발과 주먹의 수련을 통하여 도를 추구해 나가는 무술”이라고 모든 교본에 쓰여 있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살펴보고 있었을까? 얼마나 우리들 안에 새기고 있었을까? 정신’과 ‘골격’ 그리고 ‘근력’과 ‘기’와 ‘원기’의 수련을 왜 그냥 용과 호랑이와 표범과 뱀과 학의 몸짓을 표방한 무술의 동작으로만 봤을까?

아! 무술의 근본이란 바로 그 수행의 의미에 있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나는 형상에 있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어쩌면 소림사는 그냥 그대로 있었는데, 세상이 소림사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림무술의 변화는 어쩌면 그 근본의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련의 형태와 모양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겠거니….

역사 없이는 결국 쓰인 역사도 없는 것인가? 소림무술의 역사는 달마의 면벽에서 혜가의 용단으로 이어져 ‘역근’과 ‘세수’의 인간수련의 정수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하늘을 나는 소림 무술의 드러나는 공력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짜장면과 산동무술

소림사에서 받았던(아니 사실은 내 마음이 그렇게 혼자서 왔다갔다 했지만…) 상념의 일단이 태산으로 오르는 동안에도 내내 머릿속에서 가시지를 않았다. 중국 도교의 성지, 중국 5악 중 중악, 태산! 산의 높이가 아니라 그 산에 얼마나 많은 도인과 신선들이 사느냐로 경중을 정한다는 중국인들의 생각은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가 아니라 인간과의 융화에 의한 의미로 더욱 큰 의미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안개 낀 태산 정상에 있는 도교 사원의 도사는 속세와도 무술과도 그 어떤 인연과도 초연한 듯 그야말로 구리빛 얼굴에 자연스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태산의 6,600계단을 걸어 내려올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고 내 마음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산동성! 중국에서 가장 무술이 성행하는 곳이라고 했다. 당랑권의 본고장, 중국 무술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산동성무술학교’가 있는 곳,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많은 교포들이 진출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중국무술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동양 무술의 속성은 역시 비전성이고 가전성인가? “무술인구가 10만이 넘고, 도장은 600개가 넘는다”는 가이드의 대단하다는 듯 하는 말이 사실 중국의 무술계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말인 것 같았다. 인구 1억이 넘는데 10만 명에 600개의 도장이라면 태권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도인데, 태권도가 대단한 것인지 중국무술이 폐쇄적인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산동성무술학교’는 말 그대로 무술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체육고등학교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산타’와 경기중심의 우슈 종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학교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학교 형태의 대부분의 이런 무술원들은 무술의 본질과 가치보다는 시합에서의 등수가 중요한 그런 상황임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화 이후 경기에서의 입상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린 태권도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내 눈에는 이 또한 너무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학생수가 1,000명이 넘는 이런 학교가 15개 정도라고 했다. 놀라운 일은 이곳 “산동성무술학교”에서도 태권도 전공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정의 마지막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태극당랑권”도장이었다. 당랑권의 창시자 “왕랑선생”의 진전을 그대로 이어오는 태극당랑권문의 계보있는 도장이라고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금복노사의 이 도장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헬스장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는 반쪽 도장이었다.

청도에 태극당랑권도장이 단 4개 밖에 없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금복선생은 우리들의 방문에 그렇게 반갑고 기쁜 표정이었다. 미끄러운 바닥에도 불구하고 태극당랑권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시연을 해 주기도 했다. “육화” “칠성” “매화”등 당랑권의 계파들이 단순히 당랑수의 모양과 보법의 차이에 따라 나뉘어진다니! 그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무술은 많다. 그러나 가장 빠르고 강하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다. 우리는 다른 형태를 추구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하고 빠름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를 논해야 한다. 소림무술도 태극권도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내재된 가치의 본체를 봐야 한다. 쇠퇴하는 무술도 성행하는 무술도 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가치는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태권도공원에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하여 이번 여행을 왔지만 결국 그 무엇보다 우리들 내부에서 우리들 스스로를 먼저 채워야 한다는 것만 가지고 돌아왔다. 어차피 우리들 속은 우리들 스스로가 채워야 할 수밖엡 태권도도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들 속을 채우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하나보다.

류병관 전문위원(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  kek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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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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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권 2006-04-16 16:01:43

    류 병관 교수님

    기고 하신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멬시코 에서 박 상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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