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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범 수기] “나는 부끄럽지 않다” [7]사범으로 첫 느낌 ‘아, 이게 아니구나!’
‘경례!’ 구령에 수련생들 눈만 휘둥그레 어리둥절
강요 받지 않는 자율규범의 문화를 이해했어야
  • 곽금식사범
  • 승인 2008.10.06 14:07
  • 호수 609
  • 댓글 0

1972년 7월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각국 올림픽 위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라는 연락을 받고 김만금, 장광명, 송찬호 사범님들과 기차를 타고 6시간 만에 뮌헨의 서윤남 사범님의 도장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이경명, 서영철 사범님, 파리에서 이관영 사범님, 그리고 독일 타 지역에서 조복남, 정흠일, 이범이 사범님 등 한인 사범님들이 대거 참석하셨고 한국에서는 대한태권도협회를 대표해서 이종우, 엄운규 관장님이 자리해 계셨다.

곽금식 사범.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에서 올림픽 위원들에게 시범을 선보이는 순간 무대 위에 서있는 기분은 참으로 영광스러웠으며 뜻 깊은 행사로 기억에 남았다. 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우리 시범단이 보이는 기술에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한국에서 오신 관장님들도 매우 흡족해 하셨다.

이튿날 이종우 관장님이 들려주신 한국의 태권도 소식과 유럽에서 활동 중이신 선배 사범님들의 태권도 지도에 관한 경험담은 그리 순조롭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일본의 가라테가 25년 앞서 유럽에 유입되었으니 태권도의 홍보가 쉽지만은 않은 단계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우리의 태권도가 조금은 더 알려지기를 희망하였다.

뮌헨을 다녀온 후 가능하면 주말동안 견문을 넓히고자 인근의 뒤셀도르프와 쾰른을 시작으로 함부르크 등지로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독일은 땅도 넓고 자연환경이 풍요로움은 물론 고속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어느 도시에 가도 거리가 청결하고 정돈되어 있어서 역시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러울 데가 없었다.

1973년 5월 18일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사범으로서 나의 첫 경험이 떠오른다. 당시 체육관 홀로 쓰이는 YMCA 강당에는 주변 지인들과 교인들의 홍보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모여든 학생들 앞에서 사범으로 서 있었다. 내가 ‘차려!’, ‘경례!’하고 큰 소리로 구령을 붙였더니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난처한 듯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옆의 친구와 낄낄대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처음으로 외국에서 태권도를 지도해 보겠다고 대단한 포부를 가진 채 이곳에 왔지만 수강생들은 낯선 한글이 쓰인 도복을 입고 긴장하며 서 있는 가운데 그저 나를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이게 아니구나 싶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팔 동작을 시작하였더니 아직까지 동작이 어색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따라 하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태권도 수련에 앞서 태권도 기본동작의 원리나 기술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지인과의 원활한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련생들 앞에서 지도자로서의 모범이 선결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타 문화권에서 지도자로서 느끼는 근원적인 어려움은 언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등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함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태권도 정신과 기술을 교육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차려!’, ‘열중쉬어!’, ‘경례!’ 와 같은 구령들은 군 사회를 제외한 독일의 어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도 좀처럼 들어보기 어려운 어휘들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율규범을 스스로 배워나가기 때문에 규범이나 예절 등의 장단점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따르는 것을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이러한 삶의 방식은 상호관계에 있어서도 연령에 관계없이 적용되며 나이나 연륜이 많다고 무조건 존경과 순종적인 사회규범을 요구하는 권위적인 의식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언뜻 듣기에 복종과 경외심을 요구하는 듯한 태권도의 구령들은 비단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쉬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지도자로서의 생활은 일주일에 두 번 90분씩 정기적으로 반복되었고 하루도 빈틈없이 짜여진 광산에서의 생활도 어느새 3년 계약 만기일을 앞두고 있었다.

곽금식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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