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어머님! 내가 군인으로 월남 전선에 파병되어 있는 동안 하루도 두 다리를 뻗고 주무실 수가 없을 정도로 불안과 걱정으로 지내셨다. 행여 불운이라도 아들에게 닥치는 것은 아닌가 하여 가끔씩 가족들을 위해서 잡던 닭 한 마리도 손대지 않으셨다고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셨으나 수시로 사찰을 찾아가서 절도하시고 기도를 드리시며 부디 아들이 살아서 건강하게 돌아오게만 해 달라고 비셨다는 어머님. 학창시절 태권도를 한답시고 도장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영양보충을 해줄게 없어 안타까워하시며 설탕을 물에 타서 ‘이거라도 마셔라’ 하시던 어머님. 이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곽금식 사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한국의 농촌 생활은 빈곤하기 그지없었다. 월남에서 귀국한지 6개월도 채 못되어 어머님께 독일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또 그렇게 먼 길을 떠나느냐고 걱정하시는 어머님 앞에 안심을 시켜드리려고 광부로 일하러 간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고 태권도 사범으로 3년간 일하러 가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마음을 놓으신 것 같았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 고향인 달성군 논공면의 작은 마을 남동, 부모님은 어린 시절 많지 않은 토지로 농사지으며 우리 6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셨다. 이후 내가 중학교 때 대구로 이사하여 아버지께서는 축산업에 종사하셨고 이 시기에 형들이 취직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서 집안 살림이 조금씩 풀리기는 하였으나 군에서 제대한 나의 직장 문제는 사실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아들이 독일로 태권도 사범 자격으로 간다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몇 년은 아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서운한 마음이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한다고 하니 흐뭇해하시는 모습이었다. 몸 건강히 태권도 잘 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염려마시고 첫 월급을 타서 보내니 살림에 보태어 쓰시라고 한 내용의 편지와 더불어 송금을 하고 난 후 내 나름대로의 보람은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매달 월급을 전부 집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광산처럼 직종이 다양한 곳도 없을 것이다. 일이 어렵고 힘들면 그에 따라 임금도 많아진다. 하루 종일 앉아서 전기 스위치만 작동하는 쉬운 일도 있다. 그런데 얼마 후 같이 교육을 받고 출국한 한국동료들 중에는 일이 너무 고되고 어려워 도중하차하는 사람들이 속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하 캄캄한 갱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절로 땀이 나는 악조건 속에서 8시간 일하는 고통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광부가 아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학사 학위를 소지한 한국 광부들이 광산 일을 더욱 힘들어 했다.

육체적인 노동이 견디기 어려운 가운데 언어소통의 문제로 인한 고통 역시 컸을 것이다. 대부분은 말이 통하지 않아 의사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독일인 광구장으로 부터 듣는 욕설과 비어가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물론 경험이 부족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독일 광부들이 하는 작업량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더뎌지는 작업 진도 때문에 광산 책임자의 문책을 피하기 어려웠고 한국 광부들이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이 컸다.

광산일이 끝나면 오후에는 몸을 풀기 위해 체육강당을 찾았지만 숙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많아 눈길을 끌고 싶지 않았다. 나는 트레이닝복을 갈아입고 숲속으로 달려갔다. 독일은 어느 도시를 가나 인근에 숲이 우거져 있어 숲속에서 무엇을 하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지 않은 조금 넓은 공간을 찾아 기본동작부터 시작하여 발차기 전부를 순서대로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기숙사로 돌아오면 샤워를 하고 트레이닝복을 빨아서 널어놓곤 하였는데 그래야지만 내일 또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 매일 운동을 반복하면서 숲에 있는 나무를 상대로 태권도 요령을 늘려나갔다. 나뭇가지 끝을 목표로 삼아 발차기 연습에 점점 박차를 가하였다. 수개월 지나서 보니 연습하던 장소의 바닥은 탄탄하게 굳어져 고향의 마당처럼 매끄럽게 변해 있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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