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태권도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고 있던 지난 23일 베이징 과학기술대 체육관.

이날 태권도 경기는 진행 도중 세 번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심판판정을 번복하기 위해, 또 한번은 심판폭행사건에 관련된 선수와 코치에게 징계를 발표하기 위해, 마지막은 소청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경기가 예고 없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중단된 시간을 합치면 총 1시간에 육박했다.

경기장 전광판에 경기 지연을 알리는 내용이 공지돼있다. 23일 태권도 경기장에서는 이 전광판을 3번 볼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 태권도 경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30여 분까지 진행됐다. 전세계에서 주목을 하고 있는 만큼 초 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분 단위의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진행하는 게 상식이다. 9시, 9시 15분, 9시 30분 하는 식으로 계속 경기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기장 안과 밖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경기의 진행과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생방송으로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이 있기에 시간을 최대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경기가 중단 됐다는 점에서 이유야 어찌되었건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에서 정중한 사과의 표현을 관중들에게 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지막 소청결과의 발표는 논외로 치더라도 판정번복과 심판폭행 등으로 인해 경기장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계태권도연맹이 발표한 내용은 경기 결과가 이러저러해서 뒤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한 전달과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 대해 징계를 내리겠다는 발표가 전부였다. 당일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WTF 차원에서 경기 지연에 대한 사과의 언급을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단지 경기가 지연되는 시간동안 “Beijing 2008 apologizes for the delay. Competition will commence shortly.(베이징 올림픽은 경기 지연에 사과합니다. 경기가 곧 시작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떠 있었을 뿐이다. 이 문구는 경기주최측인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BOCOG)의 목소리이지 WTF의 목소리는 아닌 것이다.

모든 게 남의 탓이다. 심판판정이 뒤집어 진 건 일부 심판의 탓일 뿐이고, 선수가 심판을 폭행한 건 한 몰지각한 선수의 돌출행동일 뿐이다. WTF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열심히 ‘개혁’을 추진해 왔을 뿐이다.

양진석 사무총장은 중국 첸종과 영국 스티븐슨의 경기 결과를 번복하는 발표를 한 후 이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이번 판정번복은)태권도가 공정한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이만하면 정도가 심하다. 공정한 심판판정을 위해 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해왔는데, 그 결과가 이것인가? 이번 올림픽의 심판들은 도덕적인 면과 실력적인 면 모두에서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경기도 아니고 올림픽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을 자인하고 경기 결과를 뒤집었는데,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에서 이에 대한 사과의 말이 없다. 선수가 심판을 폭행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경기장 관중들은 물론이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해명이 없다.

이 모두가 일부 심판과 일부 선수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WTF 집행부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사고가 두 건 있었던 23일 경기를 모두 마친 후 가진 만찬회 자리에서 조정원 총재는 “그동안 WTF가 추진해온 개혁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고 나서 “그 동안 올림픽 성공을 위해 자제해온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태권도 및 연맹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용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도 반성은 없고 엄포만 있었다. 그나마 그 엄포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도 의문스럽다. WTF는 그 동안 많은 개혁을 추진해왔고, 여러 차례 윤리위원회를 소집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오지 않았던가? 그간의 결과를 우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진 결과가 이렇다.

세계태권도연맹이 그 동안 국제스포츠조직으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움직여왔던가? 자제해왔던 이 질문을 이제는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성진 기자  kaku6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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