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라비안나이트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아내에게 배신당해 여자를 증오하게 된 한 아라비아의 왕에게 새로운 왕비가 된 세헤라자데가 1001일 동안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우리가 어려서 접한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같은 이야기가 모두 그 안에 들어있다.

이야기들은 주로 남녀의 사랑과 배신에 관한 내용이 많아 전혀 아동용 서적은 아니다. 그만큼 인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재미도 있고 교훈도 많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왕자와 공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진짜 아라비아 공주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다가 이 공주가 ‘와일드카드’ 문제로 한 동안 태권도계를 들썩이게 했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공주 셰이카 마이타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28), 바로 그녀인 것이다.

셰이카 알 막툼 공주가 기자회견에서 발차기를 선보이고 있다.

셰이카 공주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UAE 태권도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출전에 앞서 막바지 훈련을 하기 위해 태권도 종주국 한국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공주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연예부 기자들이 먼저 알았다. 미스코리아 선발전 전야제에 셰이카 공주가 참석해 미스코리아 후보, 유명 탤런트들과 이런 저런 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또 셰이카 공주가 탤런트 현빈의 팬이라는 것도 가십기사로 다뤄졌다.

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아랍에미리트연합 대사관측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이다.

기자회견 장에는 태권도 전문지를 비롯해 일간지, 스포츠지, 공중파 방송 등에서 20여 명 이상이 취재를 나왔다. 제법 뜨거운 취재열기였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와일드카드’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자는 태권도전문지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셰이카 공주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던 기자들은 질문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키가 얼마나 되느냐’는 식의 질문까지 나왔다.

그러나 셰이카 공주를 유명하게 한 것은 올림픽 와일드카드 문제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기자회견은 속 빈 강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와일드카드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당신은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태권도국가대표 코치세미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셰이카 공주는 “정치적인 문제는 선수로서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은) 국가올림픽위원회가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을 따라 내가 대표가 된 것뿐이다”고 말했다. 공주의 대답은 길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더 이상 와일드카드 문제가 논란이 될 여지는 없다는 것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가라테를 하던 셰이카 공주가 태권도로 전향한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다면 셰이카 공주가 굳이 태권도를 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별로 없다. 가라테를 먼저 했고, 더 오래 했던 공주에게 가라테와 태권도에 대한 애정의 크기는 아마도 가라테쪽이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태권도를 한다. 전세계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 자국을 대표해서 출전하기 위해서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유지되어야 할 이유를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 논란은 이제 끝났다. 태권도계는 셰이카 공주를 좋은 의미에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셰이카 공주가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태권도를 수련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셰이카 공주가 태권도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태권도 인구가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셰이카 공주가 골수 태권도인이 되어 아라비아 반도에 태권도 바람이 분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박성진 기자  kaku6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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