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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사범 수기]
나는 ‘태권도 선교사, 거지왕’ [12]
내 인생의 반려 아내에게 나는 어떻게 빚을 갚을지
  • 신동기 사범
  • 승인 2008.07.14 13:30
  • 호수 599
  • 댓글 0

나는 아내에게 단단히 약속을 하였다. 다시는 시범단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 약속은 번번이 깨진다. 2006년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37명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물론 거절하였다. 그런데 미국 사방에서 나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었다. 제발 한 번 봐주라는 부탁전화였다. 오갈 데가 없는 시범단장이 지인들에게 부탁을 하여 나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제자들을 동원하여 대 식구를 도장으로 데리고 왔다 오기 전에 단장에게 도장에서 숙식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신동기 사범.

37명이 한 번 움직이려면 관광버스가 한 대 필요하다. 하루 빌리는데 한국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밥 한 끼 먹으려면 사오십만 원 이상 들어간다. 아내와 단단히 약속을 하였기에 이번에는 아마 내가 쫓겨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7명이 들이닥치자 아내는 기겁을 하였다. 그러나 곧 식사준비에 들어가 우리까지 40명이 넘는 대 식구들의 밥을 먹게 해 주었다. 아내는 항상 올망졸망한 아이들에게 약하다. 나와 결혼 전에 13년이나 교직에 있었기에 어린 아이들만 보면 마음이 약해져 팔을 걷어 부치는 것이다. 이번에도 교회 식구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었다. 아내와 제일 친한 주집사는 항상 앞장을 서서 도와주었고 후배 최경수씨는 식사에 보태라고 봉투까지 주고 갔다. 몇 년 전에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병민 사장이 식사비를 보태주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할 때 도와주는 그분들과 내 인생의 반려자 아내에게 나는 어떻게 빚을 갚을지….

82년 멕시코 독립기념행사에 초청을 받고 제자들 12명을 이끌고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시를 방문하였는데 비용 일체를 시가 부담하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물론 시범은 대성황이었다.

1983년 나는 미국 국방언어대학 태권도 교관으로 취임하여 1987년 학교가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까지 5년간 미국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군인뿐 아니라 각 정보기관의 요원들이 1년간 한국어와 세계 각국 언어를 배우는 특수학교로서 그들은 외국 언어를 이수한 후 세계 각국으로 파견근무를 나갔다. 그들은 다방, 식당에도 앉아있고 공항에 서서 평범함 외국인처럼 서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는다. 그 이상은 여러분이 상상하기 바란다.

나와 미국에 한날한시에 들어온 뉴욕의 강익조 사범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그는 실력도 좋은 사범이지만 제자들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태권도 철학을 가르친다. 그에게 배운 제자들은 영원한 제자가 된다. 얼마 전 강익조 사범 생일날 전국의 제자들이 모여 10만 불(1억원)을 거둬 생일 선물로 증정하였다. 강익조 사범처럼 우리 태권도 사범들은 참 스승으로 제자들 가슴 속에 남아야 되겠다.

나는 2003년 1월 1일 심장절개수술을 받았다. 원인은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하여 심장이 커지고 심장을 통하는 동맥과 정맥이 막힌 것이었다. 당뇨의 원인은 월남전을 다녀온 사람들이 겪는 고엽제 후유증이라고 한다. 얼마 전 보훈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수술 후 약 6개월 정도 몸을 못 쓰고 마침 한국에서 발병하여 수술한지라 비행기도 탈 수가 없었다. 이제 나도 죽는가 보다 생각이 들어 미국 제자들에게 전화로 유언까지 하였었다.

내 도장도 제법 큰 도장 축에 끼여서 사범 3.4명이 붙어야 운영이 된다. 그래서 그 때 큰 아들 화용(5단)이가 다니던 직장을 6개월 휴직하고 제자들과 운영을 하기도 하였다. 인생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병으로 고생하여 보니 헌신적으로 간호하여준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 인생의 반려자 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워낙 기초 체력이 튼튼하니 수술 후 회복도 빨랐다.

지금은 거의 정상인과 같아졌다. 수술 후 몇 달 만에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시간을 하나하나 맡아서 가르치고 있었다. 제자들도 자기 직장이 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해서 이제 그만 내가 가르치겠다고 하니 정색을 하며 자기들이 가르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며 나를 사무실로 밀어 넣곤 했다. 월급도 안 받으면서 헌신적으로 도장에 봉사하고 스승의 건강을 걱정하는 나의 제자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3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들은 항상 나의 건강을 염려한다. 아내 몰래 햄버거라도 하나 먹으려 하면 아내에게 일러 바쳐 야단을 된통 맞게 한다. 나의 제자들이 유단자가 되려면 의식이 하나있다. 한국 음식과 김치를 먹어야 하고 젓가락질 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강요하는 게 아니고 자기들끼리 만든 일종의 관습법이다. 자기들끼리 한국 식당에 가서 김치, 소주, 젓가락질을 배워온다. 나에게는 아주 자랑스러운 관습법인 것이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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