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 엄운규 원장이 지난달 26일 공식 사퇴했다.

엄 원장은 서울시태권도협회 대외협력단과 국기원 현 체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자택 앞에서까지 퇴진시위를 벌임은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춰내 국기원과 자신을 상대로 법적소송을 제기해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13년 전 증축해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해온 강의실과 기념관 등이 불법이라며 강남구청으로부터 3천 3백여 만원의 추징금이 부과되자 사퇴를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 이미 엄 원장이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7일 본지가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엄 원장은 “2차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사퇴할 계획이며, 이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국기원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들 사표 반려…엄 원장은 사퇴번복 의사 없어

김창완 기자.

지난달 26일 열린 2차이사회에서 엄 원장은 사퇴했고, 이사들이 사퇴를 만류할 것이라고 판단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이사들은 만장일치로 이를 반려 했고, 업무복귀를 요청하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이사들의 이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작 엄 원장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기원 한 관계자는 “이사회 이후 원장에게 사표가 반려됐다고 보고했지만 사퇴번복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엄 원장이 사퇴를 번복하고 업무에 복귀할 경우 서울시태권도협회 대외협력단과 국기원 현 체제 반대세력이 다시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흔들어댈 게 불을 보듯 뻔하다”며 “업무에 복귀해본들 현 상황과 전혀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다시 국기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엄 원장의 사퇴번복 의사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기원 정관개정 승인 마감일인 이달 22일 전에 이사들의 사표반려 요청을 받아들여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엄 원장의 이번 사퇴는 현 사태를 해결하고, 동시에 자신의 입지를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으로 해석하는 태권도인들도 적지 않다.

태권도 특별법 국회통과 이후 국기원은 법정법인에 걸맞는 정관을 개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기원과 유사한 태권도진흥재단은 이미 정관을 개정한 이후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국기원은 정관개정 문제로 아직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국기원 이사들 전원 사표를 받으라는 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정관개정 승인이 늦어지고, 이사들 사표 운운하는 이유가 일부 태권도계 인사들이 문화체육관광부에 국기원 이사들의 자질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 원장의 복귀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즉 국기원과 엄 원장을 흠집 내기 위해 흔들어대는 세력들을 설득하고 정관개정을 무리 없이 승인받을 수 있도록 이사회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지 않은지.

엄 원장은 국기원 이사들 중에 작금의 사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인사로 L이사가 있으며, 그가 직접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국기원 이사들은 물론 태권도계 대부분의 여론도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사로 그를 꼽고 있다. 만약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L이사와는 같이 갈 수 없다는 일종의 강한 경고성 메시지는 아닐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엄 원장은 지난달 17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기원 이사장에는 이종우 원로를 이사회가 추천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지만 원장은 규정대로 이사들이 적임자를 선출했으면 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사장에는 이종우 원로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했지만 원장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했다. 현 국기원 이사들은 모두 엄 원장이 선임했다. 따라서 이사들은 엄 원장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엄 원장 사퇴를 둘러싼 주위의 계산

국기원 이근창 처장의 움직임도 엄 원장의 의중을 대변한다고 보는 게 옳다. 국기원 모든 상황을 원장과 직접 논의를 한다. 엄 원장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처장도 “이번 엄 원장 사퇴와 관련해서는 헷갈린다”고 말했다. 최소한 업무복귀의 가능성이 완전 배제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처장의 평소 업무 스타일로 볼 때 엄 원장이 업무복귀에 대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면 이미 차기 이사장과 원장으로 가장 유력시 되는 인사를 접촉해 향후 국기원 업무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황들이 태권도계 일각에서 엄 원장 업무복귀를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는 배경이다.

엄 원장은 이미 사퇴했다. 사퇴라는 마지막 카드가 이사들이 작금의 사태를 관람하던 구경꾼에서 해결사로 나서는 계기가 되고, 그 노력으로 인해 사태가 깔끔하게 해결되고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면 엄 원장으로서는 명예회복은 물론 자신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퇴를 번복하고 업무에 복귀하는 것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이사들을 장악하고 있는 엄 원장의 의중이 곧 차기 이사장과 원장을 선출하는데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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