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오른발을 들면 균형을 잃어 곧잘 넘어지던 인규도 오른발, 왼발을 차례대로 발차기를 할 수 있고, 성장체조를 할 때 따라하지 않고 거울만 보던 혜원이도 기합을 넣고 주먹지르기를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기현이도 차츰 좋아졌어요.”

장애아 문인규 어린이의 어머니인 배두녀 씨의 말이다. 인규는 울산장애인태권도협회가 울산복지관에서 지도하는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놀라보게 좋아졌다. 

이처럼 태권도 수련이 장애아들의 재활에 한 몫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장애인들이 무슨 태권도를 배우냐”며 손가락질을 했던 사회 분위기도 이젠 많이 달라졌다. 태권도 제도권에서도 “이젠 장애인 등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보급해야 한다”며 장애인 태권도 활성화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1년 넘게 내분을 겪은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가 재건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인 태권도의 변천 과정과 장애인 태권도의 발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 장애인태권도협회의 어제와 오늘

장애인 태권도 바람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채 안 된다. 일부 태권도장에 학부모들이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해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던 일선 지도자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들의 체육(운동) 참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태권도에도 그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다.

용기있는 일선 지도자들은 사회적 제약과 편견을 극복하며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박성배씨(울산 우정태권도장 관장)와 이지성씨다. 특히 박성배씨는 2001년부터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조직(단체)의 지원과 협력을 받지 못하고 개인의 열정으로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데는 많은 고충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태권도계 안팎에선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공신력이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6년 초 아동발달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정인태씨는 회의에서 교사들과 장애 아동들의 미래와 자립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장애인태권도협회 창립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장애인이 무슨 태권도를 하느냐” “장애인태권도협회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며 장애인태권도협회의 창립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인태씨는 장애인태권도협회 창립추진위원장을 맡아 그해 6월 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이에 발맞춰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도 창립했다.

이로써 장애인 태권도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정인태씨는 장애인태권도협회의 초대 회장은 태권도 원로가 맡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진익한씨(전 강원도태권도협회 부회장)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초대 총재는 대전고검장을 역임한 이건개 전 국회의원이 맡았다.

집행부가 구성되자 장애인태권도시범단과 장애인태권도선수단을 창단했다.

2006년 9월 세계태권도연맹이 주최한 제1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개막식 행사에서 장애인태권도시범단은 시범 공연을 했다.

그해 11월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제1회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장기 전국태권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중 진익한 회장이 개인적인 일로 사퇴하자 정인태씨가 지난해 2월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2대 회장이 됐다.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은 이건개 총재가 사퇴한 후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했다.

장애인태권도협회는 지난해 3월 국제대회를 대비한 장애인 태권도 한국대표 선발전을 경민대학에서 개최했다. 당시 정인태 회장은 “그동안 태권도를 수련해온 장애인들은 승단심사 문제와 체계적인 태권도 지도 측면에서 소외를 받아 왔다”며 “장애인들의 현실과 특수성을 고려한 태권도 교육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태권도협회는 장애인 올림픽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농아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발달장애, 정신지체 등 장애 모든 영역에 걸쳐 장애인 태권도의 통합과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장애인태권도협회는 협회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취임한 지 1년도 안돼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장애인태권도협회 주도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사퇴한 것도 그를 견제하는 사람들의 음해와 모함 때문이라는 것이 정 회장 측의 주장이다. 이상인씨는 “정 회장은 한결같이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인 태권도의 저변확대와 장애인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며 그의 사퇴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물러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위의 모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정 회장이 일부 회원들과 내부적으로 싸우다가 법적고소로 치닫는 과정에서 협회 관계자의 중재로 사퇴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 회장이 사퇴한 이후에도 장애인태권도협회의 내분은 그칠 줄 몰랐다.

계속되는 갈등으로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자주 교체됐고,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금 횡령과 폭행 의혹 등이 불거져 협회 운영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11월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정기총회에서 시범 공연을 할 계획이었으나 내부 혼란 등의 이유로 공연도 하지 못했다.

당시 장애인태권도협회 황영실 사무총장은 “협회를 이끌어갈 후원금이 전혀 없다. 협회 사무실도 상근 근무자가 없다. 내년에 대회를 치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공전을 거듭하던 장애인태권도협회는 지난 3월 전환기를 마련했다. 부산에서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이근우 국기원 이사(전 부산시태권도협회 회장)를 상임부회장으로 추대하고 정인태 전 회장과 이사 2명의 사임서를 행정적으로 수리했다. 또 9명의 이사를 선임하고 신현규 사무국장을 유임시켰다.

현재 이근우 상임부회장은 신현규 국장과 호흡을 맞춰 장애인태권도협회를 재건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 장애인 태권도 단체의 현황

현재 장애인 태권도 관련 단체는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를 비롯해 대한재활태권도협회, 대한발달장애인태권도협회, 대한장애인태권도총연맹, 세계장애인태권도본부 등 10여 개에 이른다.

이 단체들의 속성에 대해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 단체들의 임원 구성을 보면 대부분 특정인과 관련되어 있는 동일 인물들이 많다”며 “왜 자꾸 비슷한 단체를 만들어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창립된 사단법인 세계장애인태권도본부는 앞으로 장애인 태권도 품새 연구 및 장애인 태권도 대회 개최, 장애인 태권도 사범 연수 등을 추진한다.

세계장애인태권도본부와 대한발달장애인태권도협회는 ‘에이블태권도대회’를 오는 10월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 4월에는 장애인 태권도 선수인 이인기(지체장애 3급)씨와 경복현(중복장애 2급)씨가 주축이 되어 한국장애인태권도선수협회를 창립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장애인 태권도 단체가 많지만 선수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며 장애인 태권도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 장애인 태권도 발전을 위한 제도권의 노력

장애인 태권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기원이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연수’를 기획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기원 연수처(처장 오대영)는 오는 8월 ‘제1회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연수’를 시행하기 위해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교재 집필위원회를 구성하고 세부적인 연수 내용을 가다듬고 있다.

이번 연수는 선천성, 후천성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전문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영역의 손상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특성에 맞춰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를 배출할 계획이다.

이번 연수의 교육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급은 지도자의 역할과 사명, 장애인 스포츠 국제기구와 이해, 장애인 태권도 지도법 심화, 장애인 심리코칭과 카운슬링, 품새 지도(유급자, 유단자), 경기운영 및 심판법 등 총 24시간이고 △3급은 세계 정세와 지도자의 방향, 장애인 태권도 역사와 최근 동향, 장애인 태권도 지도법 심화, 장애인 스포츠 개론, 장애인 심리코칭과 카운슬링, 장애인 운동지도 프로그램, 장애인 특성과 등급분류, 장애인 태권도 경기규칙 및 심판법, 품새 지도(유급자, 유단자) 총 40시간이다.

오대영 연수처장은 “그동안 태권도계가 일반 수련인들에 비해 장애를 갖고 있는 소수 수련인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장애 유형 및 등급에 따른 승단(품) 심사 규정을 새롭게 제정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수련 프로그램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원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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