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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권도 선교사, 거지왕' [9]화랑체육관과 나의 샌프란시스코 역사
  • 신동기 사범
  • 승인 2008.06.23 13:39
  • 호수 596
  • 댓글 0

1972년 나에게 두 가지의 큰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화랑 체육관을 맡게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한인 감리교회가 있었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독립 운동가들이 세운 교회로서 미주 한인들에게는 의미 있고 역사가 깊은 교회였다.

신동기 사범.

거기 담임목사로 계셨던 송정률 목사님께서 당시 길에서 놀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하여 1965년에 당신의 자동차 창고 건물을 치우고 화랑 체육관 간판을 달아 청소년들의 만남과 운동장소를 만들게 된 것이 효시였고 60년대 후반 당시 한인 회장이셨던 이민휘 회장께서 사비를 털어 정식으로 도장을 열어 운영하고 계셨다.

화랑체육관에서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 레슬링 등을 가르쳤는데 당시에는 전문 사범이 없어 교포들이 돌아가면서 비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이민휘 회장의 요청으로 내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소도 더욱 큰 도장으로 이전해 본격적으로 나의 샌프란시스코 역사는 시작되었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민휘 회장의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 사이몬과 둘째 필립은 나의 제자로서 그리고 조교로서 당시 나는 최고로 15개의 도장까지 샌프란시스코지역에 개설하고 운영하였다. 전문 사범 부족으로 지금은 7개 도장만이 있고 화랑관에서 배운 제자들 30명이상이 미국 각 지역에서 태권도 도장을 열고 활동하고 있다.

화랑관은 1965년도에 개관하여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미 서부 지역에서는 제일 오래된 태권도 도장이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한인회에 들어가 체육부 부장을 맡게 된 것이었다. 당시 제8대 문충환 회장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한인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20여 년간 한인 사회에서 봉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또 같은 해 LA에서 발족한 재미 체육회의 제의로 샌프란시스코 체육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74년도에는 한인 인력 개발원 창립에 참여하여 한인 이민자들의 교육과 직업 훈련을 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인력개발원은 나중에 가주문화대학으로 바뀌어 지금도 한인교육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상항 한인 학교를 세워 이민 2세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체육선생으로 창립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70년대와 80년대에 가장 왕성한 태권도 사범 활동을 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3만 명 이상 들어가는 카우팰리스라는 큰 체육관이 있다.  72년도에 그 곳에서 전 미국 무술대회가 열렸는데 내가 한국인 대표로 시범을 보이게 되었다. 세계 각 국의 무술 고수들이 대거 출전하여 경연을 하였는데 당연히 나의 시범이 최고의 박수를 받았다. 시범도 잘했지만 시범순서를 잃어버린  제자의 실수로 인해 내 머리를 다쳐 피가 많이 나왔으나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침착하게 시범을 잘 끝냈었기에 3만 명의 군중이 기립 박수를 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시범 사진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에 스포츠 전면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지역 최대 신문에 코리안 태권도 시범 사진이 나가자 많은 한국 교포들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다수 한인들은 작은 가게들(세탁소, 식품점, 식당 등)을 운영하는데 미국인들이 그 가게에 그 당시 사진 기사를 들고 찾아와 너의 코리안 형제가 아니냐고 묻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한국인 가게에 나의 사진과 태권도 도복이 걸리는 게 유행이 되었고 한국 교포들은 미국 손님들이 더 공손해 졌다고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1974년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무술 고수들이 참가하는 큰 국제무술대회가 열렸는데 어떻게 하면 한국 태권도와 무술을 세계 최고라고 보여줄까 하는 생각에 자동차를 배위로 넘어가게 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구경만 하였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데 내가 못 하랴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도 자동차를 몰고 나의 배를 넘어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충실한 제자 한명을 불러 나의 배를 넘어가라 너는 나를 믿지 않느냐….

그렇게 해서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서 시범을 하는데 사람들 수천 명이 나의 시범을 보러 나왔다. 나의 격파, 발차기 등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자동차 시범으로 들어갔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경찰이 와서 위험하다고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나는 이까짓 시범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면서 내 배를 차가 수십 번 넘어갔다고 하며 실랑이를 하는데 샌프란시스코 제자 경찰들이 와서 얘기를 잘 해주어 드디어 자동차 시범을 하게 되었다. 약간 겁도 났지만 결국은 조그만 트럭을 나의 배 위로 넘어가게 하였다.

다음날 미국 4대 신문에 들어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나의 사진과 기사가 신문 4분의 1 사이즈로 대서특필 되었다. 한국인으로 아직까지 나의 사진만큼 크게 나온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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