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3.12.8 금 09:53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월드태권도피아 조성을 위한 국제심포지움의 단상
  •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 승인 2006.03.20 00:00
  • 호수 491
  • 댓글 0

태권도는 심신수련의 매개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태권도는 분명 수련을 통해서 자기 방어적 호신기법을 숙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강인한 정신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자가 없을 듯하다.

이와 같은 태권도인의 관점에서 그 경계선을 넘어 오늘날 경기문화로서의 태권도를 반성해 볼 때, 불의의 상황에 처했을 때의 실전성과 자기수양으로써의 정신성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오늘날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경기문화에 편중되고 있고 승리에의 강한 욕구와 그에 따른 기술체계의 흐름에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듯싶다.

먼저 전제해 둘 것은 필자는 태권도 경기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태권도와 품새 태권도 경기의 매력이 무엇에 말미암고 또 앞으로 어떠한 경기 철학적 비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성찰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태권도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우리의 고유한 무예이다. 무술, 무도개념에 천착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태권도 수련프로그램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 무예적 측면에서 심신수련을 목표로 삼는가, 아니면 경기적 측면에서 승리지상주의를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지향하는가에 따라 태권도 경계선이 달리 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간과되고 있는 예시를 통해 성찰의 계기를 삼았으면 하는 것이 태권도교본(2006, 국기원)인 데, 그것에 따르면 기술체계는 태권도의 기본동작, 품새, 태권도의 겨루기 및 태권도 시범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기술체계의 분류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데 기본동작과 품새는 비접촉행위의 범주에 속한다면 겨루기는 접촉행위의 그것이고 시범은 그 둘을 아우르는 표현문화 등으로 구분은 크게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경기문화로서 ‘태권도’와 ‘품새 태권도’의 구분은 신체 접촉행위가 앞의 것이라면 신체 비접촉행위는 뒤의 것에 해당된다. 1:1 겨룸에서 상대의 움직임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고 허용된 득점부위에 강하고 정확한 타격에 따른 득점에 의한 판정제도가 ‘태권도’라면 품새 경기에서 정확성, 숙련성, 표현성 등 채점기준에 따른 50, 30, 20점 순의 배점비율이 정해져 있는 판정제도가 ‘품새 태권도’이다. 이 두 카테고리의 경기는 차등제를 택하고 있는 듯하다.

경기문화로서 태권도의 철학적인 설명은 기본적인 구별, 궁극의 경계선, 주목을 끌 수 있는 관계, 신체표현의 가능성과 탁월성 등이 관객들에게 의식시킨다는 것으로 공정한 경쟁을 통한 태권도 기술의 우수성이 관중에게 재미와 의미있는 정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태권도 무예는 스포츠의 장에서도 선수들은 태권도인으로서 헌신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목표에 대한 철학이 아직도 충족돼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와 같은 비판을 뒷받침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것은 ‘태권도’에서 첫째로 ‘인간이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계에 의존하려는 전자호구 채택의 움직임’이 그것이고 ‘품새 태권도’도 채점기준에서 ‘정신’ 항목의 배제는 ‘인간의 기계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을 듯하다.

경기란 특별한 상황에 처하여 투쟁에 휩쓸리고 게임 가운데에서 성취하는 잘 다듬어진 신체에 나타나는 정신이라는 것에 우리는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품새 태권도 경기에서 ‘기계화된 동작의 표현’에 승자가 가려지고, 인간이 단지 기술성에 얽매여 기계화를 추구하는 채점기준은 지양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철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3월 10일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태권도공원 조성을 위한 국제심포지움에 참가한 필자로서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주도하는 ‘태권도’ ‘품새 태권도’의 향방과 태권도진흥재단이 모색하는 전 세계태권도인의 이상(理想)과의 조화는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하나의 화두를 얻게 됐다. 그날 제1주제 「태권도의 세계화 전략」에 토론자로 참가한 오지철(전 문화관광부 차관), 문동후(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양인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와 한 태권도인(교수)의 질의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태권도의 미래는 올림픽스포츠로서 지위확보가 우선인가? 무예문화로서 세계화 전략이 우선인가? 라는 또 하나의 화두를 남긴 국제심포지움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전 세계태권도인은 짐작컨대 위 두 가지 화두 가운데 그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태권도인이 분명한 의지를 표시하고 참여해야 할 것은 그날의 열띤 애정처럼 태권도는 심신수련의 무예문화와 경기문화의 절묘한 조화를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고 제도권 행정가, 사범지도자, 전문가, 즉 경기지도자, 그리고 태권도 관련 교수 등 전체가 하나 [多卽一]이 되는, 헌신하는 리더로서의 화합과 최선을 다해 ‘월드태권도’의 관점에서 ‘탁월한 정신세계의 확립이 시급하며 그 중심’은 역시 우리 ‘인간(성 회복과 신뢰)’일 것이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wtkd@paran.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