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인사범 수기]나는 ‘태권도 선교사, 거지왕’ [5]

지금도 40년 전 월남에서 가르친 미군 제자들이 연락을 하고…

신동기 사범.

어느 날 교관단 전원을 집합 시키더니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할 때여서 아무도 나오지 않자 대학 출신을 나오라고 하였다. 교관단에는 나와 다른 한명의 대학 출신이 있었다. 내가 키가 조금 더 커서 나를 지목하여 선발하였다.

나를 선발한 이유는 맹호부대 인근에 있는 미군 4사단에서 태권도 사범 1명을 파견해 달라는 지원 요청이 왔기 때문 이였다. 나는 그때 영어 회화를 한마디도 못할 때였다. 그러나 군대는 명령 한마디에 복종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다음날 태권도 단장의 지프에 간단한 사물과 권총 한 자루를 지급 받고 한국군 부대 지역을 떠나 산 언덕길을 넘어 맹호부대에서 약 4시간 떨어진 미 4사단으로 갔다. 그 산길은 낮에 만 넘어 갈 수 있는 베트콩 출몰지역으로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다.

내가 처음 근무하고 거처할 곳은 미군 헌병대 막사였고 그 안에 도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영어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미군 교관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운동을 끝냈는데 미국 흑인 병사가 나를 찾아 왔다. 2미터가 넘어 보이는 키에 마치 고릴라를 보는 듯 했다. 내가 말이 잘 안 통하는지라 미군 제자 한명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나와 한번 싸우자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과거 권투 챔피언이었다며 나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이민의 자손들에다 서부 개척시대를 거쳐서 도전 정신이 아주 강했고 도전은 일종의 풍습이라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20대초 최고의 몸과 태권도 실력으로 호랑이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감으로 꽉 차 있을 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만약 저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여기 미군 부대에서 나를 내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도전은 일단 받아들이고 제자들 중에 헌병들이 많으니 누가 다쳐도 책임 안 진다는 약속을 하자고 하였다.

온 부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우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그 거대한 흑인을 다치게는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권투 챔피언답게 나에게 주먹을 날리며 접근을 시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 나의 몸은 나는 새와 같이 빨라 그에게 잡히지 않았다. 나는 발끝으로 그의 얼굴을 살짝 몇 번 건드려 주고 뒤돌아 옆차기로 가슴을 냅다 한 번 질러 주었다. 그의 몸이 뒤로 밀리며 휘청거렸다. 내발에 실린 그의 몸무게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같았다. 나는 공격을 더 이상 안하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의 얼굴을 여러 번 건드리기만 한 것을 아냐고 물었다. 내가 정말로 너의 얼굴을 찼다면 어떻게 될 거 갔냐고 물었다. 그도 나의 말에 동감을 하면서 자기가 졌다고 인정하였다. 그 일 이후 그는 나의 충실한 제자로 열심히 태권도 수련을 받았다.

그때 나에게 배운 제자 중에 조(JOE)라는 백인이 있었는데 30년쯤 지난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나의 도장으로 찾아와 반갑게 만났었고 또 한 번은 미군 지역을 지나다 미군 헌병 차에게 너무 빨리 달린다고 정지를 당했는데 그 헌병의 마크를 보니 그때 월남에서 내가 가르친 헌병대 마크였다. 그래서 걸린 건 걸린 거고 반가워서 내가 너희들을 가르친 선생이었다고 하니 부대에 전화로 확인을 하고는 그냥 보내준 적도 있었다.

지금도 40년 전에 월남에서 가르친 미군 제자들이 3명이나 연락을 하고 있으며 작년에 한명이 죽어서 장례식에도 다녀왔었다. 나도 이제 60대에 들어섰으니 살날보다는 갈 날이 더 가까워 온 것만은 분명하다. 월남에서는 미군 교관으로 여러 부대를 가르쳤다. 나만 미군 부대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니 동료 교관들로부터 많은 질시와 눈치를 받았다.

월남 파병 군인들은 보통 1년 근무 후 귀국하는데 나는 2년 넘게 근무하였으니 그것도 다른 동료들 눈에는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후반기에는 태권도단장께 요청 드려 나트랑에 있는 야전사령부로 전속을 가게 되었다.

나의 임무는 주월사령관 경호원직과 미군 야전사령부 태권도 교관직이었다. 당시 사령관 공관은 부대 밖 민가에 있었는데 바로 옆은 미 야전사령관 공관 등 한, 미, 월 중요 공관들이 나란히 한 바닷가가 바라보이는 불란서식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처음에는 파도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으나 며칠 지나니 괜찮았다.

당시 주월사령관이 야전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어서 작전이 있을 때만 사령관이 나트랑으로 오시기 때문에 나의 실제근무 시간은 미군 태권도 가르치는 2시간 정도밖에는 없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처럼 긴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다. 군인이었기 때문에 맡은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근무지도 이탈 할 수 없으니 젊은 나이에 놀고 먹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정말 몰랐다.

그때 사령관 공관은 손님을 많이 초청하기 때문에 한식 중식 양식 요리사가 있었고 공관 경비는 헌병들이 와서 지켜주고 월남 사람들이 청소와 빨래를 다 해주니 내가 할 일은 정말 없었다. 아침 늦게 일어나 최고 요리사들이 해주는 밥을 먹고 해변에 나가 수영이나 하고 놀고먹으니 날씬하던 나의 몸은 마구 늘기 시작했다. 태권도는 근무 시간 후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 밤에 하였다. 이유는 근무도 근무지만 워낙 날씨가 뜨거우니 밤에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신동기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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