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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사범 수기]
나는 ‘태권도 선교사, 거지왕’ [4]
“월남 교관단은 태권도 발전에 큰 주춧돌”
  • 신동기 사범
  • 승인 2008.05.12 14:13
  • 호수 591
  • 댓글 1

그렇게 두어 달 정도 부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사단에서 나를 태권도 교관단으로 심사를 보러 오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때 월남에서는 태권도 교관이 최고의 요직이었고 하늘에 별 따기처럼 힘든 직책이었다. 사단 교관단에 올라가니 전 맹호부대 태권도 유단자들을 모두 소집해서 수백 명이 심사를 보는 것이었다. 보통 3단 이상으로 한창 혈기 왕성한 20대 초이니 정말 무섭고 치열한 경쟁이었다. 왜 별안간 불러와 교관단 심사를 보나 의아했는데 사연인즉 이랬다. 교관단 숙소가 퀴논 시내에 있었는데 며칠 전 화재가 나서 총들을 불태워 먹은 것이었다. 군인들은 총이 생명이다.

신동기 사범.

특히 전시에 총을 잃어버리면 당장 영창에 보내지고 불명예 귀국을 시켜 버린다. 교관단 막사에 불이 나면서 대부분의 교관들이 몸만 빠져 나왔으니 마침 파견 나갔던 3명만 빼고 20명 정도의 교관단이 영창에 가거나 귀국 초치를 당하는 바람에 새로 교관단을 구성해야 되는 것이었다.

당시 월남 교관단은 주월사령부 교관단이 있었는데 주로 월남군 교육이 주목적이었고 초기에는 장교 위주였다가 후반에는 사병들도 교관단에 들어왔다. 그 외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태권도 교관단이 있어 각 지역 월남군교육과 대민 봉사 차원으로 민간인들을 교육시키고 시범을 보이면서 당시 한국군의 위력을 보여 주었고 태권도의 위력이 곧 한국군의 위력으로 월남인들에게 보이고 알려졌었다.

당시 맹호부대 일개중대가 베트콩 사단과 밤새 전투를 벌였으며 나중에 총알이 떨어지는 바람에 맨손으로 백병전을 벌여 베트콩군 사단을 물리쳤던 일화는 지금도 세계 전사에 남는 기록이다. 당시 모든 한국군은 태권도를 수련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 쓰던 고물 총과 무기로 우리보다 더 우수한 AK 자동 소총을 갖고 있던 베트콩을 상대로 싸워서 이겨 냈으니 당연히 세계가 놀랄 일이었다. 월남 사람들은 뼈대가 가늘어 우리 한국인보다 날씬하고 왜소해 보인다. 베트콩들은 몸의 차이로 일단 한수 꺾였으며 한국군들이 맨손과 발로 벽돌과 송판을 마구 깨고 부수고 하늘로 날아다니니 그들이 한국군을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태권도 교관단은 거의 매일 월남군부대와 학교를 돌아다니며 태권도의 위력적인 시범을 보이니 한국군은 그들에게 신비스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원래는 태권도 교육과 시범이 대민 봉사의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국군이 월남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는 인식을 주어 정신적으로 싸움의 기선을 잡지 않았나 생각된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는 같은 아시아권에다가 유교사상으로 어른 공경과 예의범절이 비슷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효과를 보았다. 예를 들어 미군들은 초콜릿이나 과자를 던져 주었지만 우리 한국군은 노인들에게 두 손으로 드리고 담배를 권해도 공손히 불까지 켜주니 한국군의 대민 봉사는 미군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맹호부대 태권도 교관단에 선발되어 처음 한 달은 매일 8시간이상 태권도 교관 훈련을 받았는데 거의 대다수 교관들이 3단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맹호 교관단에서는 과거 사회에서 배운 태권도는 모두 무시되었고 군대식 태권도 기본동작과 품새를 기초부터 교육시키고 새로운 군교관으로 재탄생 시켰다.

월남의 날씨는 한국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씨보다 더 더웠다. 그 더운 날씨에 지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도장에는 큰 양동이에 물을 떠놓고 그 옆에는 알로 된 소금이 있어 한주먹씩 소금을 집어 물과 함께 마셨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물과 소금을 먹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 발바닥은 뜨거운 지열과 고된 수련으로 인해 쩍쩍 갈라졌다. 그러나 태권도 교관단 교육은 인정사정없이 매일 행해졌다.

처음에는 교관들끼리 대립도 많았다. 교관단 구성이 각각 다른 관에서 수련한 사람들이라 기본동작들이 제 각각 달랐다. 그러나 한 달 후 우리는 쌍둥이처럼 통일된 움직임을 보였고 기량은 일취월장되어 갔다.  각각 다른 도장에서 운동을 하여 기술이 많이 달랐지만 좋은 기술을 서로 교류하다 보니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나의 근 50년 태권도 수련기간 중 그때가 수련 량이 제일 많았고 기량도 가장 많이 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한 달의 훈련을 마치고 월남군부대와 민간인 학교에 매일 태권도 교육을 나갔다. 태권도 수련은 맨땅이나 시멘트 바닥에서 맨발로 행해졌다. 또 한 달에 서너 번씩 시범을 하여야 되었다. 그때 지금의 태권도 수련화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월남군 부대와 각종 행사에 태권도 시범은 빠질 수 없는 중요 행사가 되었다.

그 때 우리가 한 시범은 근대 태권도 시범의 기초가 되었다. 군 교관단에서 제대한 사람들 대부분이 도장을 내서 사범이 되었고 국기원 창설과 세계연맹 조직의 선봉장이 되었다. 주월 한국군 태권도 교관단은 태권도 발전에 큰 주춧돌이 되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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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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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병원 2020-02-15 22:03:51

    신동기 사범. 나 황병원 맹호부대태권도사범일쎄 대글 받았보는 즉시 01☆-5004-1283으로 열락주겠나 기달리게 정말 반갑다 신동기사범 전화열락기다린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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