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초 나는 드디어 옴리 훈련소를 떠나 월남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가 떠나는 날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에 걸어서 강원도 높은 산언덕을 넘어 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가 왜 금수강산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옴리는 설악산과 가까워 경치가 수려하고 특히 눈에 덮인 아름다운 설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언덕을 넘어 트럭을 타고 춘천역에 도착하니 역에는 많은 가족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 자식들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었다.

신동기 사범.

기차는 청량리역을 거쳐 부산항으로 가는데 기차 길 양쪽에는 헌병들이 줄줄이 서서 혹시 탈주병이 있을까 하여 엄중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기차가 청량리역을 들어서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가족들에게 알려서 떠나기 전 마지막 면회를 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시간은 10분 기차창문을 통해서 가족들을 면회하는데 나의 부모님도 형제들과 함께 나오셔서 창문으로 마치 마지막과도 같은 눈물의 이별을 나누었다. 그리고 기차는 부산항으로 서서히 떠나고 말았다. 기차는 밤새 달려 부산항에 도착했으며 우리들을 엄청나게 큰 수송선 앞에 내려놓았다. 남쪽 지역 가족들은 부산항으로 직접 나와 면회를 하였고 학생들과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우리를 실은 배는 태평양으로 유유히 출항을 하였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국인 요리사들이 하얀 모자를 쓰고 세상에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환영하는 것이었다. 6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바나나, 오렌지 등이 귀한 과일이었는데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마음대로 먹으라는 것이었다.

잠을 자는 선실에는 2층 침대가 쭉 깔려 있었는데 침대마다 빈 깡통 하나씩이 달려있었다. 그때 우리 생각에는 그 깡통이 재떨이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잠시 후 그 깡통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수만 톤급의 그 큰 배가 태평양 가운데로 들어가니 추풍낙엽이 되어 조그만 돛단배나 별 차이가 없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때 거의 모두들 그 깡통을 잡고 꽥꽥 소리들을 치는데 나는 그래도 서울 놈이라 배 타고 제주도도 갔다 온 경험이 있어 뱃멀미를 참고 갑판으로 뛰어나와 먼 바다를 바라보니 우리 배만 외로이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에 내려가니 텅텅 빈 식당에는 산해진미가 그대도 쌓여 있었다. 모두들 토하느라 정신없었으니….

5일 만에 우리 배는 월남 퀴논 항에 도착하였다. 큰 배를 항구에 댈 수 가 없었는지 우리는 상륙정에 옮겨 타고 해변으로 상륙하였다. 월남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하얀 모래사장과 야자수들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월남의 아가씨들은 이국의 정취로 젊은 우리들을 긴장과 흥분에 휩싸이게 했다.

나는 맹호부대 사단보충대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바로 사단인사과에 스카우트 되었는데 이유는 그때만 해도 대학출신이 극소수였기에 내 학벌을 보고 최고의 요직으로 손꼽는 사단인사과에 뽑힌 것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시였으며 나는 다시 보충대로 쫓겨 내려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글씨를 못 쓰는 난필 가였다. 얼마나 난필이냐 하면 내가 결혼을 하여 한국에 있는 처에게 편지를 썼는데 내 글씨를 본 처갓집 식구들이 내 학벌이 거짓이라 생각되어 학적조사를 하려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보충대로 내쫓겨 온 나는 맹호부대 태권도 교관 단에 지원했다. 한명을 뽑는데 수백 명이 지원을 하였고 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재구대대라는 월남에서는 최전방부대의 병참담당으로 팔려갔다.

나의 일과는 매일 사단으로 트럭을 가지고 가서 물건을 수령해 오는 일이었다. 부대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내 성격에는 갑갑한 부대 안에만 있는 것 보다는 훨씬 좋았다. 오후 6시쯤 되면 부대 정문은 바리케이드로 막아 완전 봉쇄 되고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한 번은 밤에 부대 밖이 소란하게 월남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정문에서 소리를 지르며 한국 군인들은 물러가라고 시위를 하였는데 그들 뒤에 베트콩들이 총을 들고 선동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민간인들을 방패삼은 베트콩들을 공격 할 수 는 없었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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