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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7)즐비한 리민(里民) 회관들, 다 어쩌려고?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04.28 11:33
  • 호수 589
  • 댓글 0

불로초와 관련된 고사(故事)와 에피소드의 소개는 잠시 뒤로 미루고 걷기를 계속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리적인 형편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걸 보고 조금 놀라는 정도로 그쳤다. 시골 양반들이 참으로 모처럼 호사(豪奢)를 했구나 싶었다.

최창신 상임고문

상당한 예산이 투입됐을 텐데 어떻게 조달했을까? 국가차원, 즉 중앙정부에서 지원했을 리는 없고 이 마을 출신 인사 가운데 어떤 분이 서울이나 일본 오사카쯤에 진출, 큰돈을 벌어 고향에 수십억원을 희사했는가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한 노릇이었겠나.

군민(郡民)회관이라고 내놓아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는 크고 멋진 ‘마을회관’. 이게 군(郡) 단위는 물론 아니고, 면(面) 단위도 아니며 리(里) 단위의 마을회관이라니!

현대식 3층 건물에, 모양도 멋지고 규모도 제법 큰 데다 주차장도 옹색하지 않다. ‘OO리민(里民)회관’이라는 간판이 밝게 빛나는 봄빛 속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싶었지만 그런대로 지나쳤다.

그러나 한림에서 중문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이러한 회관이 마을(里)마다 건립되어 있음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이건 분명 각 리(里)마다 서로 체면을 위해 경쟁적으로 무리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C일보의 논설위원 김태익은 말한다. 외국의 작은 마을들은 아이디어와 개성을 살려 각종 공연장이나 미술관 등을 짓고 이를 잘 활용하여 ‘짭짤한’ 수준을 벗어나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아 나아가고 있다고.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든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는 인구 5천명의 작은 마을이나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작품을 중심으로 특화된 쇼 페스티벌을 열어 1년에 전세계에서 3백만명이 찾게 만들었다고 한다.

영국의 소도시 리즈(Leeds)는 신작발표의 무대를 집중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공연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우중충한 공업도시에 아이디어 하나로 미술관을 운영,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떠오른 스페인의 빌바오도 각광을 받는다 했다.

이건 그야말로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 우리의 현실은 우리 스스로를 답답하게 만든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시·군·구와 같은 일선 행정기관은 ‘눈에 보이는 선심성 사업’에 주로 열을 올려 쓰임새가 별로 없는 각종 ‘회관’들을 양산(量産)해 내고 말았다.

종류도 다양해 일반적인 용도의 어리벙벙한 ‘마을회관’, 경노사상 좋을시고 ‘노인회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복지회관’, 이름 한번 고상하다 ‘문예회관’ 등이다.

시·군·구의 경우 ‘군민회관’은 정서상, 체면상 필수. 사실 이것도 행정청사 안에 적절한 별도공간을 만들어 쓰면 족하련만 모두들 따로 지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 면(面) 단위를 넘어 리(里)에까지 회관을 짓다니, 무슨 짓들인지. 이게 전국적인 현상이라 하니 ‘회관 공화국’을 만들어 놓았군.

행정구역 리(里)가 어떤 규모인가. 그 넓이와 인구의 규모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간단히 줄여서 인구 50명부터 백명 정도면 하나의 리(里)가 된다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리민회관’은 대략 20평가량의 공간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제주도 서부지역에서 만난 여러 ‘리민회관’들은 그 크기나 모양이 도민회관이라 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 건물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활발한 시간이었건만 모든 리민회관에는 약속이나 한 듯 개미새끼 하나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주민들이 사는 집들은 허술해 보이는데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회관만 크고 멋지면 무슨 소용인가. 더욱이 병원이 없어 유일하게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보건소는 작고 낡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어 짙은 페이소스마저 느끼게 했다.

리 단위의 복지관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다. 보통 인구 기준으로 하면 주민 50명 내지 100명 정도가 하나의 리(里)를 이룬다고하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산이 풍족하게 남아돌기 때문일 텐데 이런 이유라면 각종 세금을 줄여 주는 연구를 해야 옳을 것이다. 두 번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거나 생색이 덜 나는 일은 안하고 인기를 끌만한 일에만 매달리는 경우.

만일 두 번째 이유 때문이라면 그건 ‘속곳 벗고 은가락지 끼는’ 어리석은 짓이다.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는 속담이 모기처럼 소리내며 한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허영은 꽃을 피울 수 있을지언정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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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상임고문

- 현 국기원 이사. 1960년대 선수생활을 한 정통 태권도인.

언론인(서울신문) 출신으로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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