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대째에 걸쳐,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같은 직업을 가지고 한 길을 가는 집안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것인데, 가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을 그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태권도계에서도 간혹 아버지와 아들이 태권도인으로서 같은 길을 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도장을 아들이 물려받아 이끌어가는 경우가 바로 그것인데 이런 수십 년의 전통을 가진 도장이라면 우선 그 버텨온 연륜만큼의 신뢰를 가지게 된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한국체대 화랑태권도장(지도관장 김정현)이 바로 30년 전통의 가업을 잇고 있는 도장이다.

김정현 관장

화랑태권도장은 1976년 서울 거여동에서 개관했다. 현재 지도관장으로서 도장을 이끌고 있는 김정현(32) 관장의 아버지인 김창운(60) 총관장이 창관자다.

20년간 거여동에서 태권도 터줏대감으로 있었던 화랑태권도장은 다른 도장에 비해 훈련이 고된 것으로 유명했다 한다. 요즘 태권도장들처럼 수련생을 한 명이라도 더 오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는 식이었다.

이러한 화랑태권도장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견디고 남은 수련생은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 대회에서 겨루기를 할 때도 화랑태권도장 출신하고는 대결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화랑태권도장이 시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97년. 시흥에서 터를 잡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현재 화랑태권도장을 이끌고 있는 김정현 관장은 아버지이기도하고 스승이기도 한 김창운 총관장의 고된 훈련으로 버티고 남은 수제자 중 하나다.

김정현 관장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1994년 KBS배 국제태권도대회에서 밴텀급에서 우승했다. 1996년에는 국기원 국가대표 시범단에 있었다. 40여 개국에서 태권도 시범을 펼친 장본인이다. 서울체고와 한국체대를 거쳐 현재는 동 대학교 사회체육대학원에서 체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론과 실기 양쪽에서 모두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김 관장이 아버지로부터 도장운영의 전권을 물려받은 것은 2001년. 그간의 경험과 배운 지식을 앞세워 의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아버지 김창운 총관장이 보기에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정통 태권도교육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됐다.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만 제대로 지도하면 됐지 뭐 다른 것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자간의 생각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 김 관장의 적극적이고 세심한 도장운영에서의 노력은 결국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관원 수를 3배 가까이 늘려나간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버지 김 총관장도 이제는 아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들이 태권도 지도는 등한시 한 채 이른바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고 태권도는 태권도 대로 제대로 가르치면서 세심하게 도장을 운영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들 김 관장이 이렇게 태권도 실력과 도장 운영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버지 김 총관장의 덕택이다.

한국체대 화랑태권도장

김 관장은 “고등학교 무렵에는 태권도가 하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그렇게 방황하던 저를 아버지가 채찍질로 바로잡아 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일을 화랑태권도장에서는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박성진 기자  kaku6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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