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체대, 경희대, 그리고 WTF

박성진 기자
승인 2008.03.20 18:09
호수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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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세계태권도연맹(WTF) 본부건물 앞에서는 한 건의 시위가 있었다. 앞선 7일 해고된 2명의 직원이 소속된 WTF 노조가 해고의 부당성 및 WTF와 조정원 총재의 비리를 주장하고 규탄에 나선 것이다.

이날 시위에는 약 70여 명이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시위대의 구성을 보면 시위를 주도한 WTF 노조(민주노총 산하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 WTF지부)에 속한 인원은 전체적인 구성에서 볼 때 소수였다. WTF 노조원 3명과 김호정 경인사무서비스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 약간 명이 WTF노조 관계자라고 할 수 있었고 나머지 대다수의 시위대는 이른바 ‘태권도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날 시위에 참가한 ‘태권도인’들 중 대다수가 이번에 해고된 2명의 직원과 같은 대학(한국체육대학교) 선후배들이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한국체대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국체대 출신 태권도학과 교수들을 비롯해 한국체대 출신 현직 태권도실업팀 코치와 선수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번 해고가 이들의 주장처럼 부당하고 WTF에 문제가 많다면 왜 유독 한국체대 출신들만이 이러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느끼고 시위에까지 나섰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해고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자신들의 선후배가 이번 해고의 대상자였다는 점이 이들을 시위대에 참여하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날 WTF 노조는 특정대학(경희대)출신들이 WTF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총재, 총장은 물론 총무부장 등의 주요 보직이 모두 경희대 출신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비롯한 시위대의 주장에 일면 타당한 면이 없지는 않다. WTF가 조정원 총재를 중심으로 한 경희대 인맥에 의해 장악되어 간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시위에 나선 한국체대 출신 동문들이 만약 한국체대 출신 유력인사가 WTF 총재를 맡고 한국체대 출신 태권도인들이 WTF의 주요 보직을 장악하고 있을 때도 과연 이날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시위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날 비판의 대상이었던 경희대학교에서도 동문회 차원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경희대 태권도학과 출신의 한 태권도인이 송봉섭 국기원 부원장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며 이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을 동문회 차원에서 다음날(14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송봉섭 국기원 부원장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해서 예정된 기자회견은 취소되었지만 ‘경희대 태권도학과 동문이 피해를 보면 동문회 차원에서 나선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게 알렸다.

이번 WTF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 경희대 출신 태권도인들 중에서 동조하는 경우를 기자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WTF와 노조의 갈등이 경희대와 한국체대의 대립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학연을 동원해서 세를 과시하려는 노조측도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빌미를 제공한 WTF 조정원 총재의 인사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현재 조정원 총재가 임명한 WTF의 임직원들이 누구 못지 않은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견이 많지 않다. 그러나 태권도계에는 경희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 못지 않은 인재들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WTF가 조정원 총재의 경희대 측근들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조 총재가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