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에 엄운규 부원장이 원장으로 취임했다.

태권도계는 태권도계에서 존경받는 원로이자 정통 태권도인을 전 세계 태권도 동호인들의 중앙도장을 이끌 적임자로 엄운규 원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김운용 전 원장이 태권도계에 거세게 불어 닥친 민주화 역풍을 맞고 밀려난 자리를 메웠다는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지난 4년간의 여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장 취임과 동시에 기대감 속에 불안감도 엿보였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엄운규 원장은 국기원의 발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획조정실을 신설하고 이근창 현 사무처장을 실장으로 선임했다. 원장의 든든한 후원을 업은 이 처장은 낡은 내부 규정 손질을 시작으로 국기원 정보화사업까지 손을 댔다. 명분은 필요 없는 인원을 감축하고 그 예산을 국기원과 태권도 발전을 위해 유용하게 쓰겠다는 계산이었다.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세계적인 추세임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처장의 이러한 계획은 일부의 거센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 처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인원감축은 결국 이 처장이 후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인원감축은커녕 태권도연구소 신설과 일부직원 채용으로 인해 오히려 국기원 전체적인 인원은 더 증가했다. 국기원 정보화사업을 승인한 엄 원장과 이를 진두지휘한 이 처장은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엄운규 원장은 이 처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져버리지 않고 더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이 처장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엄 원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이 처장은 적어도 국기원 내에서 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총무이사, 부원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이 처장이 결정하기에 따라 업무를 원장과 원스톱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번 발언 파문도 이러한 허점 때문에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다. 녹취록 내용을 보면 기술전문위원회 구성도 엄 원장과 이 처장과 송봉섭 부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돼있다. 

사무처장은 임원이 아니다. 집행의결기구가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직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녹취록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은 한 간부직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의결기구인 이사회 기능 상실과 실행이사회의 유명무실, 상근직 임원들의 무능이 가져온 결과다. 국기원이 이근창 처장의 발언파문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놓여있는데도 이사들 중 누구 하나도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태권도인들이 국기원 이사회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이유다.

요즘 국기원 행태를 보면 문제가 조직에 있는 것인가, 사람에게 있는 것인가라는 논쟁이 필요 없다. 조직과 사람 모두에게 있다. 부실한 조직이라도 그 구성원이 훌륭하면 좋은 결과를 얻어왔다. 반대로 잘 짜여진 조직에 구성원이 부실해도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가 필요한 곳에 적당한 인재를 배치함으로써 가능하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 밖의 것은 다음이다. 그런데 국기원에는 태권도계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은 있어 보이지만 변화에 필요한 적당한 인재가 아직은 없는 듯하다.

김창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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