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여름 장마철에 / 염예퇴(艶預堆·중국 양쯔강의 첫 번째 골짜기로 험난하고 위험한 상태를 일컬음)가 말(馬)처럼 우뚝하여 /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다 / 아아! 이보다 더 험한 곳은 없으리니’

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 선생의 남명집(南冥集) 민암부(民巖賦)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난달 18일 이근창 사무처장이 장호범씨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요즘 국기원 이근창 사무처장의 처지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태권도 인생 중 최대의 위기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 처장은 국기원을 압박해오는 임윤택 서울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을 구속시키기 위해 장호범씨를 몇 차례 만나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도모했으나 지난달 18일 변심한 장씨의 양심선언으로 궁지에 몰렸다. 좀처럼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이 처장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장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처장과 나눈 대화를 모두 녹취했다며 그 중 2월 11일에 나눈 대화의 핵심을 공개했다.

파장은 컸다. 임윤택 상임부회장은 이 처장에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고, 이 처장에 의해 자신의 이름에 거론된 사람들은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특히 이 처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 사람은 “아무리 술자리라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많이 했다. 더 이상 이 처장을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불신했다.

이처럼 파문이 커지자 이 처장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는 등 파문 진화에 나섰다.

특히 이 처장은 “심사비 문제를 다룬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을 내가 작업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선 지도자들을 현혹해 국기원과 나를 흔들려고 자기 입맛에 맞게 내용을 조작했다”며 장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동안 수세에 몰렸던 이 처장은 지난달 말부터 허위 사실을 유포해 자신과 국기원의 명예를 훼손하면 법적대응을 하겠다며 공세를 펼쳤다. 또 녹취 내용과 관련해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며 서울시협회 측의 사퇴 압박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이 처장의 대응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자신의 패착(敗着)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시협회 측의 공세에 밀려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태권도계 안팎에서는 장기전으로 갈수록 이 처장이 이롭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처장과 엄 원장을 퇴진시킬 수 없다며 서울시협회 측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노련하고 치밀한 이 처장이 쉽게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태권도계의 한 중진 인사는 이 처장에 대해 “이번에 큰 실수를 했지만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 처장을 퇴출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처장에 대한 여론과 인심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그와 인연을 맺었거나 현재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동정하거나 옹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국기원의 한 임원은 “이 처장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경륜이 부족해 실수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 인심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 처장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고 해도 떠난 인심을 회복하고 그를 견제하는 국기원 안팎의 시선에 어떻게 대응할 지 궁금하다.

서성원 기자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성원 기자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