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6.25 화 19: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태권도에 내인생을 맡기고 3한 달에 1,000불짜리 따라지 인생
  • 김홍래 사범
  • 승인 2008.01.21 16:15
  • 호수 577
  • 댓글 0

● 세 번째 부탁

전기, 전화, 운전면허증 취득을 위해 내 이름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언어 소통 때문에 겁부터 났다. 물론 대충의 언어 사용은 가능했다. 30여 년 전 미 5공군에서 태권도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 짧은 생활 영어를 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계약이나 전문 용어 등 난해한 어휘를 구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길도 익숙지 않고 모든 것이 생소했다.

생각다 못해 옛날 서울에서 같은 직장에 다닐 때 형님이라고 부르던 분이 가디나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30분 거리여서 염치없이 부탁을 하기로 했다.

며칠 후 그 형은 오후시간에 잠간 짬을 내어 오셨다. 나는 아파트 계약서와 여권을 소지하고 형을 따라 나섰다. 전기 및 수도국(DWP)을 가는 길은 회색빛이 감도는 칙칙하고 조금은 어두운 듯한 흑인동네에 있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담당자가 우리를 부른다. 서류를 검토하더니 200불의 보관료를 예치하란다. 예전에는 예치제도가 없었는데 한국 등 외국의 유학생들이 전기를 사용하고 마지막 달 전기 사용료를 내지 않고 귀국하여 이런 예치금제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전화를 가설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에 가서 절차를 밟았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받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쳐 형을 괴롭혔고 무난히 합격하였다.

나의 염치없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곳에서 필수적인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갖게 되었다.

“형!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어린 감사의 표시였다.

“고마워 할 필요 없어. 다음에 아는 사람이 이민 오면 도움 받은 만큼 도와줘”

낮선 이국땅에서 나의 생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 이었다.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하며 도움을 받으며 신세를 져야 했다. 이런 나의 뻔뻔스런 행동들은 초기 미국생활에서 남에게 의지 할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신세 진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 첫 직장에서 작은 실수

나는 빈털터리로 이곳에 왔다. 설령 자금이 충분하다 할지라도 이곳에서 크레디트 없이 체육관을 임대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내 스스로 크레디트를 쌓을 시간이 필요했고 미국도 더 알아야 했다.

이제 막 미국에 온 새내기가 설친다고 될 리도 없고 거대한 미국의 시스템에 도전하기는 아직 철부지 였다. 현재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은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달리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급하면 돌아가라’ 옛 속담처럼 서두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가졌다. 체육관은 어떻게 운영하며 어떤 시스템으로 사업을 하는지 알아 볼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집 사람의 수입으로는 겨우 아파트 임대료, 자동차 할부금 지불정도가 가능했다. 아들 태호의 교육비와 한 달 살아갈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가 해결해 주어야 했다.

돈도 벌고 미국을 배운다는 자세로 신문의 구직난을 뒤적이기를 여러 날 우연히 태권도 사범 혹은 합기도 사범을 구한다는 광고 기사를 보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8시간 일하고 한 달에 1000불짜리 따라지 인생이 되었다. 그러나 힘 좋고 발랄하고 영어 잘하는 젊은 사범도 많을 텐데 인생의 절정기를 지난 초로의 나를 채용해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근무시간은 정오부터 밤 8시까지 하기로 하였다.

김홍래 사범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최신댓글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