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태권도계 지인들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지인들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도착하자 잠시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대화의 내용은 태권도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마치 태권도계 오피니언 리더라도 된 듯 태권도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갑자기 “김정길 회장 임기는 언제 끝나는데”라고 물어서 필자는 2009년 2월 말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함께 있던 지인들 입에서 합창이라도 하듯 “뭐 1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너무 길게(임기) 느껴진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권도인들의 회장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고 애써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날 함께한 지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필자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습니다. 회장이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있지만 태권도인들은 회장이 잘못한 것 이상으로 회장에 대해 분노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회장께서도 스스로 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한 후 지난 4년을 뒤돌아보면 태권도인들의 이러한 심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장께서는 정녕 지난 4년이 태권도계 발전적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십니까. 최근 회장께서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태권도계 자정운동을 통해 개혁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혹시 자정운동을 통해 임춘길 전 전무이사의 사퇴가 마치 태권도계 전체를 개혁한 것으로 착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요.

지난 10월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한 지방협회 모 인사가 여성심판을 비하하는 원색적 폭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태에 대해서도 회장께서는 원칙에 따라 강한 징계를 내리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제재 움직임도 없습니다.

“전국체전은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국내 스포츠인들의 제전인 만큼 체육회 차원에서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규정대로 처리하겠다”고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회장께서 임기동안 핵심 사업인 자정운동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큰 사건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그러한 식언에 의해 회장께서는 스스로 자정운동을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인들이 자정운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핵심적 이유입니다. 

2004년 KTA 회장 선거당시 태권도계 일각에서 체육계와 전혀 인연이 없는 정치인 김정길 회장이 당선되면 정치권에 의해 태권도가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론을 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가 나와 태권도계 스스로 할 수 없는 개혁과제를 진행시켜달라는 더 많은 태권도인들의 요구가 강했기 때문에 힘센 정치인 김정길 회장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지금 분노하고 있는 태권도인들이 바로 회장을 선택했던 그 태권도인들입니다. 태권도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개혁하지 못한 것 이전에 바로 회장께서 약속한 일들마저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기회에 그 인사에 대한 강력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더 큰 욕설과 항의로 인해 경기장은 그야말로 액션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될 것입니다. 또 그가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회장께서 져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번 징계건을 엄정히 처리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면 회장께서는 남은 임기 동안 태권도인들로부터 태권도인들이 조성해 놓은 놀이터에서 시소놀이나 하다가 짐을 챙기고 떠나려 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분명 회장께서는 문제가 된 인사의 징계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장 주변의 참모들이 그 인사를 징계할 경우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징계를 만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전체 태권도인들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편안함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차기 회장 선거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싶은 주변 인사들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회장께서 직접 징계를 내리기 위한 절차를 지시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그런 것이겠지요.

태권도에 대한 애정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권력을 재생산해낼 기회를 만들려는 술수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언론에서 이 사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려는 꼼수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태권도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5년을 허송하다 떠난 회장의 모습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태권도인들에게 휼륭한 평가를 받으며 명예롭게 퇴진하는 회장이 되기를 진정 원합니다. 1990년 당시 3당 합당에 반대했던 소신이 1년 남은 임기동안 태권도계에 정의를 일깨우는 소중한 결단으로 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창완 국장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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