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권도를 배우면서 맨 처음 사범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사범님에 대한 예(禮), 수련생 상호간에 대한 예(禮)로 인사를 배운 것 같다. 지금도 태권도를 지도할 때 강조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예의(禮儀)이다. 태권도는 예로 시작하고 예로 끝난다고 하여 예시예종(禮始禮終)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태권도뿐만 아니고 타 무도나 스포츠에서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말하고 예시예종을 강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와 인격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가는 11월 수원에서 열린 세계태권도 한마당 2007대회에 참석했다. 품새경기가 진행되면서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가서 ‘차례’ 경례구령에 맞춰 인사를 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이것은 경기에 참가하는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심판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선수를 바라보는 심판들은 아주 근엄한 법관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선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가서 인사를 할 때는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심판에 대한 공경의 표시이며, 선수가 심판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인 것이다. 특히 품새는 태권도의 근본이라고 한다. 태권도가 가지는 모든 것은 품새에 있다고 국기원 태권도 교본에서도 말하고 있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는 정성을 다해서 인사를 하지만 심판들은 선수가 들어서는 순간부터공정의 저울을 가지고 선수를 평가하며 선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주시하며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런데 태권도가 정말 예를 강조하고,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고 한다면 인사하는 선수에게 심판은 가볍게 목례로 답인사를 했으면 한다.

물론 심판은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가 인사를 할 때 일일이 답인사를 한다는 것은 힘들고 불필요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와 심판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과 서로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비춰질 때 믿음과 신뢰가 생기며 이것이 품새경기의 진정한 가치라 할 것이다.

품새 경기의 가치를 증대시키려면 이젠 심판의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 공정한 판정은 심판의 첫 번째 임무이며, 제일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심판이 경기장의 주인공처럼 보여 진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멋진 모습으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경기장의 꽃이라고 하면 심판은 꽃이 빛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수가 하는 인사를 존중하며 받아주는 자세가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품새대회는 경기진행 방법이 많이 발전하고 있고 경기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선수는 상대선수와 인사를 하고 출전하는가 하면, 선수와 코치가 함께 나오고 상대선수와 코치가 마주보고 같이 인사를 하고 경기를 시작한다. 품새경기의 발전을 위해 이와 같이 모두들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경기가 끝나면 상대편 코치에게 인사를 하고 코치는 선수를 격려해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태권도는 몸으로 행하고 보여주는 행동철학이기 때문에 이런 작은 행동들이 품새 경기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서민학 육군사관학교 태권도 강사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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