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너 걸음 물러서는가 하드니“얏!” 주먹질을 하며 덮쳐왔다.

나는 엉겁결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또 두 팔을 이리 저리 꼬면서 어르더니 잔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옆으로 비켜서는 체하면서 공중회전 뒤차기로 그의 옆머리를 후려 찼다. “엇!”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 산더미 같은 덩치가 옆으로 풀썩 나둥그러졌다.

놀란 나는 “괜찮습니까?”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살피면서 부축해 세웠다.

“아-예 괜찮습니다.”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덕분에 천장에 매달린 복싱백보다 더 좋은 실물로 연습은 잘 했지만 이일은 다음해에 내가 대학에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게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가끔은 인근 가라테 사범, 복싱선수, 레슬링선수 등이 내게 도전을 해왔다. “TAE KWON DO" 라고 붙은 생소한 간판이 궁금하기도 했을 테지.

1971년 성탄절 한 달 전부터 나는 도장 건너편에 있는 그랜트 백화점에서 부업으로 이동 경비원 일을 시작했다.  엄동설한에 아파트라도 하나 빌릴 수 있을까 해서.

하루는 몸이 뚱뚱한 흑인 여자가 겨울 코트를 입고 텔레비전 진열대 앞에서 이상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설마 하면서도 나는 그녀 옆을 지나치며 물건들을 대충 눈으로 점검하고는 좀 떨어져서 망을 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진열대를 떠나자마자 되돌아와 본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히 좀 전에 있었던 7인치 탁상용 텔레비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오리걸음으로 뒤뚱거리면서 문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따라 잡았다.

“실레 합니다만 잠깐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녀는 “왜 이래! 이것 놔!” 잡힌 팔을 뿌리치면서 화를 벌컥 냈다.
 이리 좀 잠깐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다시 그녀 팔을 잡기는 했지만 사정하듯 달랬다.

“ 너 이 미친 녀석 이것 못 놔?” 하며 홱 뿌리치는 순간 두 다리 사이에서 텔레비전이 툭하고 떨어졌다.

세상에 소형 텔레비전 하나를 사타구니 사이에 끼고 걸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뚱보 아줌마는 “잘못했으니 모르는 체 해달라.”며 빌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가서 매니저에게 사정해 보시오.” 나는 그녀를 끌고 백화점 사무실로 갔다. 결국 이일은 다음날 아침 지역 신문에 보도되고 말았다.

또 한 번은 피팅룸(옷을 입어 보는 방)에 들어가서 내의 4장, 바지2장, 셔츠2개 등을 코트 속에다 겹쳐 입고 나오는 여자를 붙잡은 일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장갑, 장난감, 연필 등 하루에 보통 두세 건을 처리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네 명의 흑인 젊은이들이 백화점 구석에서 나를 에워쌌다.

“너 왜 우리들을 못살게 구느냐?” 따져 물었다.

비상대비를 취한 나는 “미안하지만 내 직업상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이야”

“꼭 그렇게 심하게... 너 전번 날 신문에 나온 그 부인이 저 애 엄마인줄 알기나 하냐?”

내 정면에 선 바싹 마른 젊은 흑인이 씽긋 웃으면서 윗도리 오른쪽을 살짝 제쳤다.

허리춤에 진갈색 둔부를 살짝 드러낸 권총.

“앗차! 이일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다음호에 계속

곽병열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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