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텬 도장은 지역상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Dutch) 사람들이 도시의 주 구성원인데 그들은 현대 물질문명과 과학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누도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마차를 타고 다닌다. 아무리 위독해도 수혈을 받지 않고 군대에 가지 않는다. 자연과 평화를 제일로 아는 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곳에다 도장을 하나 더 내기로 했다.

1971년 여름 본 도장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피닉스빌 이라는 소도시의 중앙 네거리에 오랫동안 비어둔 낡은 건물 하나를 찾았다. 철광 산업으로 형성된 이 도시는 한 때 아주 잘 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 장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밸리 포오지 전장이(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됨.) 바로 접한 도시다.

나는 건물 주인을 만나서 어렵게 임대계약 흥정을 했다. 월세 150불에 한 달 보증금을 내기로 결정했다. 이민 올 때 가져온 씨앗 돈 84불 중 50불을 선불로 지불했다. 300불 (한달세와 보증금) 중 나머지 250불은 3개월 내 벌어서 갚기로 구두 약속을 했다. 알고 보니 이 건물 주인은 근처에서 소문난 부자라는데 마음이 이렇게 후한면도 있었다.

우선 종이에다 “Tae Kwon Do"라고 써서 유리창에 붙이고 커다란 복싱백 하나를 천장에 매달았다.
아파트를 빌릴 수 있 여유가 업는 나는 분간 옆에 붙은 조그만 사무실에서 기거하기로 햇다 해수욕장용 플라스틱 벤치와 녹색 군인 담요 한 장을 구했다.

수련생이 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옆에 있기는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외로움이었다. 한국 사람과 말이라도 실컷 해 봤으면 후련하겠다 싶었다. 미국 올 때 가져온 모 여자 가수의 가요 판 “oo 먼 곳에”를 향수에 젖어서 틀고는 또 틀었다. 그래도 외로워서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기에는 내 자존심이 더 더욱 허용치 않았다.

식사는 배가 고플 때만 근처 식당에서 고기와 빵조각으로 시장기만 면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는 며칠이고 아예 굶어버리기도 했다 보리밥에 된장국 깍두기 생각을 하면서 목젖이 아프도록 군침을 삼키고는 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이었다. 몸은 점점 더 약해져서 체중이 겨울 135파운드를 오르내렸다

어느 날 300파운드는 되어 보이는 이웃마을 백인 가라테 사범이 찾아와서 “태권도가 어떤 것인지 한 수 부탁해요”어쩌고 하며 거만을 떨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 뭐... 가라테하고 비슷한 것입니다 만, 내가 좀 바빠서...”

그는 “태권도는 발차기 묘기가 대단하다면서요? 내게 한 수만 ...”라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잠깐만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올게요!” 내 음성은 이미 약간 흥분해 있었다.

내가 탈의실에 있는 동안 그도 옆에 붙은 화장실에서 도복으로 갈아입는 것 같았다.

마룻바닥 한가운데에 마주선 우리는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습관성 예를 표했다.

내 몸무게보다 두 배도 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산더미가 눈알을 부라리며 앞에 버텨 섰다.

내가 이곳에 살아남느냐 쫓겨나느냐의 대결이었다. 주먹을 불끈 쥔 내 손은 약간 떨고 있었다. “요놈을, 사타구니를 차버릴까!? 아니야 그건 비겁해” 그의 가슴팍을 찼다.

그런데, 내 몸이 튕겨 나왔다. “아이쿠, 이게 웬일? 발목이 시큰하도록 찼는데”

겁먹은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곽병열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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