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한인태권도사범수기공모]곽병열의 징검다리건너서 (5)

<어느 시골 참새 한 마리가 커다란 돛대 위에 앉아서 항구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넋을 잃고 있었다. 그는 돛배가 항구를 떠나 바다 멀리까지 항해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앉아있었다 “앗 차!” 하고 정신을 차린 참새는 서둘러서 북쪽으로 한참을 날아 봐도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날아보았지만 역시 망망대해 뿐 이었다. 조급해진 참새는 “이제는 틀림없겠지!” 하고 동쪽으로 그리고 서쪽으로 날아보았지만 역시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참새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면서 배 위에서 살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은 돛대 위에 앉은 참새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빵 조각도 던져주고 휘파람도 불어주었다. 이제 그는 아침마다 먹이를 찾아서 멀리 알 필요도 없어졌고 쫓겨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오히려 육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편하고 풍족했다.

파도소리 망향가로 시름을 달래고 정들어 살다보니 타향도 고향 이런가 싶은데 그래도 그리운 고향 산천 보고픈 얼굴들>

나는 도장 수련생들에게 최선을 다 했고 그들은 외롭고 서툰 내 이국생활을 이해하려 애를 썼다. 주말이면 어울려서 식사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병 돌리기 게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남녀가 삥 둘러 않아서 차례로 빈 유리병을 돌린다. 병 주둥이가 동서쪽으로 항해 서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고 이성이면 입맞춤을 하는 게임이다. 키스하는 장면만 봐도 홍당무가 되는 촌놈이 이렇게 노랑머리 여자들의 키스세례를 받는 광경이야 정말 천연 기념물 감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꼴을 보고 여자들은 더 짓궂게 굴었고 심지어는 프렌치 키스까지도 스스럼없이 퍼부었다.

또 하나는 Funny Bone 게임이라는 놀이다. 남녀 쌍으로 두 팀이 바닥에 깔린 카드를 교대로 뒤집어 보고 지시대로 팔 ,다리, 목, 혹은 가슴 등 두 남녀가 뒤엉켜서 몸이 서로 부착해 있어야 되는데 가끔은 부끄러운 부분이 서로 맞붙어 있어야 될 때도 있다.

먼저 어떤 부분이 떨어지거나 다음 카드 지시를 더 이상 따르지 못하는 쌍이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한창 무르익은 내 나이 스물여덟 총각 때의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이곳 생활에 길들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태권도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부모들은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핑계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성인들을 위한 요가 시간을 따로 만들었다 20여명의 학생이 더 불어나긴 했지만 내 몸이 견뎌나지 못해서 몇 개월 만에 그만 두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경찰서, 학교, 쇼핑센터, 수영장, YMCA, 라이온스 클럽 등등 한 달이 멀다 않고 시범을 하며 이들에게 태권도의 위력과 묘기를 소개 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이미 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본 가라테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루는 지역 고등학교 강당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특별 수업으로 한 시간 동안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품새, 겨루기, 격파, 순서대로 잘 진행되었다.

막바지에 죠셉이 1인치 송판 다섯 장 정권 격파를 실패하고 말았다. 세 번이나 송판에서 퉁겨난 주먹은 살이 까지고 부풀어 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석장으로 줄이자고 권했으나 그의 고집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군중들 앞에서 태권도의 자존심이 한껏 상한 내 젊은 혈기는 끝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받쳐 쥐고 있던 송판을 죠셉에게 넘기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시 눈을 감고 단전에 기를 모았다. “아-얏!”나는 가볍고 날쌔게 온몸을 날려서 빈 공간을 찔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두두둑....!” 깨진 열 조각이 송판이 바닥에 떨어졌다.

군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면서 나는 긴 날숨을 몰아냈다. 오른 손이 저려왔다. 곁눈질로 내려다보니 손등이 퍼렇게 부어올랐다. 평소에 정권 단련을 하긴 했지만 물체에 가한 힘의 중압을 견뎌내지 못한 중지 손마디가 바스러진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병원을 찾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이 일은 나의 마지막 정권 격파 시범이 되고 말았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악수를 할때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비뚤어진 내 오른손은 궂은 날에는 아리고 뜨끔거리기까지 한다.

곽병열 사범 dssim22@paran.com

곽병열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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