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 중반 어느 봄날 국기원에서 열린 태권도 경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국기원을 찾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들어서면 첫눈에 확 들어왔던 언덕위의 높은 청기와집, 널찍한 마루와 높은 천정 그리고 용마루. 이것이 나의 국기원에 대한 첫 인상이다.

초창기 덜 닦인 국기원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다소 불편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국기원을 세워 태권도의 미래를 내다 본 김운용 초대 원장의 선견지명은 그야말로 탁월한 것 같다. 그 후 나는 수없이 많은 가슴 벅찬 격정의 순간들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에게 국기원은 태권도 경기를 통한 도전과 절망 그리고 또 다시 갈망과 도전을 반복하면서 20대의 젊은 열정을 불태운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국기원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몇 해 전 8단 승단 심사를 위해 찾은 국기원은 과거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제 국기원은 언덕위에 도도하게 서 있는 청기와집이 아닌 주변의 환경에 눌리고 갇혀 있는 그런 평범한 도시의 한 건물에 불과 했다.

세계태권도 본부로서 그 위용과 기능성을 더불어 갖추고 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이것이 그때 국기원을 방문하면서 받은 나의 솔직한 느낌이자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기원의 외형적 환경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많은 태권도인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국기원에 대한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안목이 아닌가 한다.

국기원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국기원은 현재의 태권도 발전을 일궈온 터이자 수많은 태권도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장소다. 또한 국기원은 건물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의 혼이 머물러 있는 정신적이며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국기혼’이라고도 일컫을 수 있다.

어쨌든 국기원은 전 세계 모든 태권도인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국기원의 위상은 지금 어디를 향해 곤두박질하고 있는가? 국기원에 대한 위엄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면을 통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전 세계 모든 태권도인들은 국기원의 위상이 미래의 태권도와 태권도인 모두의 위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태권도인들 사이에 국기원을 무시하는 태도가 편만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종주국 태권도 지도자들 스스로가 경계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일견 방치된 듯 보이는 가운데 점점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몰상식한 인사가 “사단법인 국기원”이라는 명칭으로 단증장사(?)를 하다가 구속된 사실이 있다.

태권도인들은 모두는 스스로를 위하여 국기원의 권위를 지켜가야 한다. 국기원은 태권도인들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기원은 어떠한 형편에서나 모든 태권도인들의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 또한 태권도가 단순 격투기가 아닌 수행적 무도로서 그 상징성 유지를 위해서 국기원 자체와 그 가치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국기원은 국기원의 권위를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철저히 이행해야 하겠다. 국기원의 권위는 국기원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와 깊은 관계가 있다. 국기원의 역할은 태권도 전반에 걸친 연구, 단증발급, 지도자 교육 및 자격증 발급 등 이라고 할 수 있다.

국기원에서 제정된 이론과 기술 그리고 용어 등은 모든 태권도의 표준(standard)이다. 이렇게 국기원에서 보급된 태권도는 단증 발급을 통해서 그 질을 컨트롤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국기원에서 발급된 단증만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통 태권도 단으로 인정하는 특수한 사실이었고 단증 발급은 국기원 고유의 권한으로 인정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안은 지속 되어야 할 것이다.

단은 태권도의 기술과 이론의 획득 및 철학의 활용의 활용 정도를 인정하는 태권도 권위 자체이다. 최근 이와 관련된 심각한 소식들이 들린다. 일부 개인과 단체들이 자신의 소익을 좇아 자체단증을 발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 단체에서 자체 단증을 발급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참으로 태권도 종주국의 미래가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국기원은 도대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지 아니면 방관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만약 이러한 사고에 대비한 법적 제도장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규칙에 따라 이를 처리해야 하겠고 그렇지 않다면 조속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국기원은 제정되는 기술과 이에 따른 이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과학적 검증을 거치고 사상이나 정신은 동양의 전통사상과 철학이 서양의 시대적 흐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또한 태권도 기술과 이론의 폭을 지금까지 정해진 일정한 틀에 제한시키기 보다는 세상에 더 많은 무술들과 폭넓은 교류를 통해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받아들여 태권도화 하여 국기원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되기 바란다.

그리고 일단 일정한 과정을 거쳐 제정된 국기원의 프로그램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표준으로 삼아 지도 보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국기원의 적극적인 해외 활동이 요구된다. 시범단을 내보내 시범을 하는 것도 이미지 부각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훨씬 더 많은 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기원이 담당해야 할 해외에서의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수가 국기원에 가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소수의 교육자가 다수를 만나 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대륙별 국기원 지부를 설치하여 국기원 원장이 임명한 분원장이 업무를 관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전 세계가 글로벌 네트워크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하부 조직이 없는 세계본부는 있을 수 없다. 업무의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국기원 분원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기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태권도 발전을 위한 국기원의 역할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해 보았다. 국기원은 현대 태권도를 이끌어 온 터이자 세계 태권도의 본부로서 태권도와 태권도인들의 이미지이다. 아울러 국기원은 태권도인들의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 시대와 새태의 풍파에 따른 아픔과 상처도 가슴으로 안고 있다.

국기원은 태권도 종주국의 상징성을 갖고 있고 수행무도로서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기원 고유의 기능과 업무가 인정되고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태권도 종주국과 태권도인들의 이미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원은 세계본부로서 업무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국제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제 국기원은 태권도계에 새로운 기운이 얼어나 태권도가 21세기 인류에 보다 더 많은 선물을 줄 수 있는 요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태권도인들의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바라고 있다.

박천재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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